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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46번 계약서 작성... 아이들만 바라보고 싶다"

공립유치원 시간제-기간제교사, 무기계약직 전환 촉구... "고용불안 해소돼야"

등록 2021.12.21 12:43수정 2021.12.2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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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는 12월 21일 경남교육청 현관 앞에서 "공립유치원 시간제-기간제교사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교사가 10년 동안 46번 썼던 계약서를 전시해 놓았고, 그 속에는 3일과 18일 근무 계약서도 있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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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는 12월 21일 경남교육청 현관 앞에서 "공립유치원 시간제-기간제교사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교사가 10년 동안 46번 썼던 계약서를 전시해 놓았다. ⓒ 윤성효

 
"눈물이 난다."

경남도교육청 현관 앞 중앙화단에 나란히 걸려 있는 계약서를 본 노동자가 한 말이다. 경남지역 한 공립유치원 기간제·시간제교사가 10년 동안 쓴 계약서다. 한 교사가 10년 동안 무려 46차례에 걸쳐 49장의 계약서를 썼다. 계약서에는 3일(2017년 8월 7~9일), 18일(2016년 8월 1~25일) 근무기간도 있다. 대부분 6개월 내지 1년이다.

유치원 기간제·시간제교사는 비정규직으로, 계약 갱신해 오고 있다.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 이에 교사들은 무기계약직을 요구하기로 했다.

화단에 걸려 있는 계약서에는 이름과 유치원 등 일부 내용이 가려져 있다. 공개됐다가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 교사는 "용기를 내서 계약서를 가져와 걸어 놓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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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는 12월 21일 경남교육청 현관 앞에서 "공립유치원 시간제-기간제교사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 윤성효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지부장 강선영)는 21일 오전 경남교육청 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유치원 방과후 과정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지난 20년 동안 '에듀케어', '종일제강사', '시간제·기간제교사' 등 다종·다양하게 불리어 왔고, 신분은 '단기간계약직 노동자' 내지 '시간제·기간제 강사', '시간제·기간제 교사' 등으로 바뀌어 왔다.

11년째 유치원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고 밝힌 교사는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없는 방과후전담사가 되어 편안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고용안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첫해 겨울, 정규반 선생이 교장한테 '인사해'라고 하더라.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두 번째 겨울에도 같은 이야기를 듣고서야 내년 고용에 대한 것이란 의미를 알았고, 뭔지 모를 서러움과 내가 살아온 세상과 나의 신념과는 너무나도 다른 민낯을 느끼고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화장실에서 소리죽여 펑펑 울었다. 아직 이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바로 나온다"며 "그때 느꼈던 무서움, 불안감, 공포로 다가왔던 것 같다. 세상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고, 처음으로 쪼그라든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겪었던 아픔을 열거한 그는 "동료 교사에게 정규반 선생이 '저 선생님 남편은 벌이가 안 좋냐'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돈 때문에 일한다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나의 직장을 내 소중한 직장을 너무도 쉽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몸도 아프던 저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이들만 바라보며 아이들 걱정하고 챙겨주고 싶다.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없는 방과후전담사가 되어 편안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고용안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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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는 12월 21일 경남교육청 현관 앞에서 "공립유치원 시간제-기간제교사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교사의 계약서. ⓒ 윤성효

 
10여 년간 근무해온 국공립유치원 방과후교사는 "제가 재계약을 위해 엉뚱한 곳에 쏟을 수밖에 없는 정성과 관심을 이제 온전히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종일제 강사 신분으로 6개월 단위로 계약을 맺었던 적도 있다"며 "그런데 종일제 강사에서 저도 모르게 시기간제교사로 바뀐 결과는 학교비정규직근무자임에도 무기직 전환불가 대상자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고와 재계약은 10년을 상시지속 근무 중임에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어 업무에 임하는 순간순간마다 족쇄같이 따라다닌다"며 "업무 중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수많은 세월 동안 결코 말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재계약을 해서 일을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교사가 건강해야 아이들 교육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시·기간제교사인 저의 건강과 안전은 누가 지켜주나. 교사라면서 공가, 연가, 병가 등 아무것도 못 쓰고 있다. 교사라서 무기계약전환불가라고 하는데 교사 중에 감염병에 걸리면 해고한다고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교사도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재계약을 위해 엉뚱한 곳에 쏟을 수밖에 없는 정성과 관심을 이제 온전히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매년 고용불안에서 오는 우울과 스트레스는 분명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학교비정규직노조 경남지부는 회견문을 통해 "유치원시간제기간제는 상시 지속적 업무임에도 매년 공개채용과 재계약을 반복하는 거의 유일한 직종"이라면서 "이는 학교 내 유일하게 상시로 고용불안,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는 직종이라는 것이며, 가장 갑질에 시달리는 구조에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다"라고 주장했다.

경남지부는 "10년 동안 46번의 계약서. 이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지 않는가? 이런 행태가 버젓이 학교라는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묵과하고, 외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교육청이 진정 유아교육의 질 향상과 '갑질 구조'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학교 내 '을 중의 을'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유치원 시간제·기간제교사의 간절한 염원인 무기계약전환에 화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립유치원 #기간제교사 #시간제교사 #학교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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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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