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노트
김지은
연초에 쓴 일기를 보니 작년에 적은 7개 목표 중에 동그라미 친 건 2개뿐이었다. 몇 년 전부터 동화 습작을 쓰고 있어서 '공모전 당선'이라는 목표도 있었고 '책 세 권 내기'라는 목표도 있었다. 그 목표를 읽자 딸과 남편이 와하하 웃었다. 한 권도 아니고 세 권이라니,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소소한 이벤트는 또 있다. 크리스마스이브마다 하는 '마트 습격'이다. 크리스마스이브는 휴일도 아닌데 왠지 그냥 지나치기 아쉽다. 나가서 분위기를 내려고 하면 차가 무지하게 막히고 음식값도 비싸다. 그래서 우린 크리스마스이브에 마트에 가서 평소에 주저주저하며 사지 못했던 음식들을 마음껏 산다.
그날 하루는 "초콜릿이라 안 돼. 과자는 한 봉지만 사" 이런 말은 할 수 없다. 난 훈제 오징어와 견과류를, 아이는 젤리나 초콜릿을, 남편은 주류를 신나게 담는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큰 상을 펴고 애니메이션을 보며 맛있게 먹는다. 평소에는 큰 상에 오르지 못할 간식거리들이 메인 음식과 함께 큰 상을 점령하고 있는 걸 보면 괜스레 웃음이 난다.
지금 남편과 나와 아이가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자. 충만한 시간은 어디로 가지 않고 각자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그저, 지금이 즐겁다면
<어바웃타임>에서 아버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시간을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바로 어린 아들과 함께 집 주변의 바닷가를 산책하는 것이었다. 거창한 것이 아닌 함께한 소소한 일상이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 다른 사람이 될까봐 두려웠다. 그 시간이 되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분주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연연하지 말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저 지금 아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함께 즐거운 일을 많이 하자고 생각한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 "엄만, 아무것도 몰라!"라고 하면 뭐 어쩔 수 없지. 그 시기가 잘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우리 엄마가 날 기다렸듯. 그냥 그렇게.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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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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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우리 가족은 '비밀노트'를 펼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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