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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혁명'의 정명으로 불러야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17] 3ㆍ1운동이 아닌 혁명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

등록 2022.01.05 15:43수정 2022.01.0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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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기록화(독립기념관) ⓒ 독립기념관

 
역사는 정명(正名)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동학난→동학혁명, 4ㆍ19의거→4ㆍ19혁명, 광주사태→광주민주화운동이 사례이다. 기미년 민족적인 항쟁을 일제는 폭동ㆍ소우 등으로 깎아내렸지만 독립운동가들은 3ㆍ1혁명, 대혁명 등으로 부르고 중국의 신문 잡지도 그렇게 썼다.

제헌국회가 헌법초안을 만들 때 한민당 계열 일부 의원들이 초안의 3ㆍ1혁명을 이승만 국회의장에게 '과격용어'라 주장, 받아들여서 오늘에 이른다. 청교도혁명, 프랑스대혁명, 신해혁명, 러시아혁명 등 외국의 변혁운동은 혁명이라 부르고, 심지어 4차산업혁명, 1968년 5월 프랑스 등 유럽의 시위에는 68혁명이라 호칭한다. 3ㆍ1운동이 아닌 혁명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를 밝힌다.

첫째, 국치 9년만에 소수의 친일파를 제외한 전민족이 하나가 되어 자주독립을 선언하였다.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시위에 참여한 것은 세계혁명사에서 처음이다.

둘째, 군주제를 폐지하고 근대적인 민주공화제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민족대표들이 법정에서 독립하면 민주공화제 국가를 수립할 것이라 진술하고, 각종 지하신문은 민주공화제를 추구했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를 받아 민주공화제를 채택했다.

셋째, 여성이 사상 처음으로 역사현장에 등장하였다. 4천년 동안 남성위주의 가부장제도에서 신음해오던 여성들이 독립된 주체로서 사회에 참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넷째, 신분해방의 측면이다. 조선사회의 '천민계급'에 속해 있던 기생ㆍ백정ㆍ광대 등 하층민들까지 조국해방투쟁에 참여하여 평등사회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섯째, 비폭력투쟁이다. 3ㆍ1혁명의 지도부는 처음부터 비폭력, 일원화, 대중화를 지침으로 하였다. 이 사실 역시 세계혁명사의 초유의 일이며, 촛불혁명의 모형이 되었다. 

여섯째, 세계피압박민족 해방투쟁의 봉화역할을 하였다. 중국의 5ㆍ4운동을 비롯 인도와 이집트, 중동과 아프리카 제국의 반식민지 해방투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곱째, 국치 이래 독립운동 일각에서 진행되어온 존왕주의 복벽운동을 중단시키고, 주권 불멸론 - 국민주권승계론에 따른 국민국가시대를 열었다. 

여덟째, 국내 만이 아니라 해외에 나가 살던 이주민과 망명자들까지 하나로 묶어내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이루었다. 한인이 거주하는 세계 곳곳에서 독립 만세에 참여하였다.

아홉째, 독립의 당위성과 함께 일제의 패권주의와 침략성을 폭로하고, 인류가 지향해야 할 국제평화ㆍ평화공존ㆍ인도주의 등 이상을 제시하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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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3.1 종로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군중들 (사진출처:서문당) * 당신은, 우리는 저 자리에 함께 할 수 있겠는가? ⓒ 서문당

 
이와 같은 대전환을 가져온 것이 기미년 3~4월 한민족이 성취한 3ㆍ1혁명이다. 이를 일컬어 '혁명'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만3천여 명의 사상자와 4만6천여 명이 투옥된 거족적인 선열들의 항쟁에 부끄럽지 않는 정명을 찾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박동완 #민족대표_33인 #박동완평전 #근곡_박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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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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