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나이 50을 앞두고 이런 채굴, 부럽습니다

등록 2021.12.29 09:02수정 2021.12.29 09:0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 문장의 뜻을 완전히 곡해한 채 살아온 세월이 너무나 억울하다. 야망과는 거리가 먼 글쓰기나 올레길 위에서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며, 인생을 잘못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에 떨던 시간이 있었다.


야망이라면 모름지기 소학행보다는 막대한 부와 높은 사회적 지위가 연상된다.
그러나 윌리엄 클라크가 말한 야망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여기 그 전문을
보자.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이 'not for money'이다.

BOYS, BE AMBITIOUS, not for money, not for selfish accomplishment, not for that evanescent thing which men call fame. Be ambitious for attainment of all that a man ought to be.

그대로 직역하면, "얘들아, 정신 차려. 돈 때문도 아니고 이기적인 성취 때문도 아니고 남자들이 명성이라고 부르는 그 반짝이는 것을 위해서도 아니다.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성취하기 위해 야망을 가져라."

여기 야망의 뜻을 곡해하여 'not for money'가 아니라 'only for money'를 추구한 두 명의 피해자가 있다. A는 강남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으나, 뭐 좀 재미있는 것이 없냐고 경기의 빌라에 사는 필자에게 시시때때로 하소연한다.

"집을 팔아. 그리고 제주도에 집 한 채 사서 올레길 종주를 해. 그럼 인생이 재미있어질 거야."


필자의 말에 A는 깊은 한숨을 쉬며, 아이 교육 때문에 강남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아파트를 결혼할 때 증여해야 하므로 팔 수 없다고 묻지도 않은 몇 년 후의 걱정까지 늘어놓는다.

B는 대기업에 다니며 정년퇴직을 한 달 앞두고 있다. B는 가난했던 소년 시절 계획한 인생의 금전적인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B는 명예로운 퇴직 대신 계약직으로 새 출발 한다고 한다. 그것도 3개월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계약이 해지되는 일이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주위의 조언에 B는 맥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이 나이에 하고 싶은 게 뭐가 있겠냐? 회사 다니며 막걸리 값이라도 버는 게 좋아. 계약직이라도 이만한 일이 없어."

B는 남들보다 먼저 도착한 결승점에서 행복 대신 무료함과 욕심을 짊어지고 스스로 출발선에 다시 섰다. 남들이 보기에 행복해 보이는(아니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둘의 공통점은 취향의 부재이다.

둘과 달리 자신의 취향을 찾은 아저씨도 있다. 그와 나는 주식이나 부동산 이야기 대신 '각자의 취향'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리의 대화가 짙어진 것은 마흔이 넘어 각자의 취향을 가지고 나서이다.

몇 해 전 여름, 그는 그림 강좌에 등록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내가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와 비슷했다.

"원래 전공자였어?"
"무슨 뚱딴지 같은 짓이야?"
"그림을 사서 재테크를 하겠다는 게 아니고, 마흔이 넘어 그림을 배워보겠다고?"


그는 획일화 된 그림 수업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온라인 수업을 통해,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칭찬해 주는 사람 없었지만(사실 초기 그림은 좀 그랬다) 피카소라도 된 것처럼 즐겁게 그렸다. 우리의 대화 도중 캠핑카 여행이 화두가 되면, 며칠 후 아이처럼 신나서 그림을 그리는 식이었다.
 
 호주 캠핑카 여행
호주 캠핑카 여행이로 작가
 
그의 취향이 반영된 그림은 세월과 함께 차곡차곡 쌓여 나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며칠 전, 그의 SNS에 '좋아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알고리즘의 마법이었다. 그림 하나가 인스타그램의 추천을 받은 것이다. 이미 그에겐 인디 가수의 앨범 표지, 책 표지, 카페 홍보용 그림 주문이 있었지만, 그의 생활은 여전히 월급에 의존하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주문이 폭주하여 전업작가로 나서는 거 아니냐는 나의 호들갑에 그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고 답했다. 지천명을 앞둔 아저씨는 행복을 코인이 아닌 취향에서 채굴하고 있다. 빅토르 위고는 사십은 청춘의 노년기, 오십은 노년의 청춘기라고 했다. 중년이여! 야망 대신 취향을 가져라!
 
 이로 작가의 인스타그램
이로 작가의 인스타그램이로 작가
#소년이여야먕을가져라 #취향 #중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 아직 안 죽었다. 출간 찌라시 한국사. 찌라시 세계사 저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은퇴로 소득 줄어 고민이라면 이렇게 사는 것도 방법 은퇴로 소득 줄어 고민이라면 이렇게 사는 것도 방법
  2. 2 남자를 좋아해서, '아빠'는 한국을 떠났다 남자를 좋아해서, '아빠'는 한국을 떠났다
  3. 3 32살 '군포 청년'의 죽음... 대한민국이 참 부끄럽습니다 32살 '군포 청년'의 죽음... 대한민국이 참 부끄럽습니다
  4. 4 소 먹이의 정체... 헌옷수거함에 들어간 옷들이 왜? 소 먹이의 정체... 헌옷수거함에 들어간 옷들이 왜?
  5. 5 서울중앙지검 4차장 "내가 탄핵되면, 이재명 사건 대응 어렵다" 서울중앙지검 4차장 "내가 탄핵되면, 이재명 사건 대응 어렵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