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명예선대위원장이 지난해 12월 30일 이재명 대선 후보 직속 미디어·ICT 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그러나 정치적 비유에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 있다. 성별이나 장애 등 상대방의 정체성을 폄하하는 비유나, 역사적인 비극과 같이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친 참사를 비유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정치인으로서 마땅히 지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추 전 장관은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야당의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304명이 실종되거나 숨진 세월호 사건을 상대 측을 비난하기 위한 비유의 대상, 즉 수단으로 삼았다. 제아무리 세월호 선장과 국민의힘 당대표가 동명이인이고, '가만히 있으라'는 발언에서 기시감이 들었다고 해도, 세월호 사건으로 숨진 희생자와 유가족을 약간이나마 생각했다면 이런 비유를 해서는 안 됐다고 본다.
2021년 3월, <매일신문>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게 폭행당하는 시민의 사진을 빗댄 만평을 실었다. 그러나 이후 해당 만평이 표현의 자유를 넘어섰다며 비판이 쏟아졌고 논란이 커졌다.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당은 관련해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전두환 신군부가 자행한 광주학살을 인용한 것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희생자에게 상처를 입히는 매우 부적절한 접근"이라며 <매일신문>의 사죄를 촉구하기도 했다.
추 전 장관의 세월호 참사 비유가 논란이 됐던 <매일신문> 만평과 무엇이 다른가. 광주민주화운동이나 세월호 참사나 여전히 당사자의 기억 속에서는 생생하게 살아있을 국가폭력의 일종이다. 단지 상대를 깎아내리고 정치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 국가적 비극을 도구로 삼은 점은 두 사안 모두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상대가 했을 땐 비판했으면서... 이 또한 '내로남불' 아닌가
지난 2020년 7월,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회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얘기한 '통제받지 않는 폭주 기관차'가 돼 버렸다. 이 폭주 열차가 세월호만큼 엉성하다"며 추 전 장관의 행보를 세월호 참사에 비유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이를 교통사고에 비유해 유족들 상처에 소금을 뿌리더니, 또다시 지금의 국회 상황을 세월호 참사에 빗대고 있냐"며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일관된 막말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주호영 의원을 비판했다. 강병국 민주당 의원도 "언제까지 세월호를 정쟁의 도구로, 상대 정파를 부당하게 비난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것이냐"라며 주 의원을 비판했다.
2020년 당시 주 의원의 세월호 참사 비유를 향한 민주당의 논평과 강 의원의 비판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같은 잣대로 추 전 장관을 비판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겠는가. 추 전 장관을 비판하는 세월호 참사 비유는 '일관된 막말'이자 '정쟁의 도구'고, 추 전 장관이 세월호 참사 비유를 이용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국민의힘 논평에 동의한다
지난달 27일 열린 박근혜씨 사면 철회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유가족 어머니는 "아이들과 같이 지냈어야 할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 아들은 없는데 박근혜 사면이라니, 이래선 안되지 않느냐"라며 울분을 토했다(관련 기사: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박근혜 사면, 유족 두 번 죽이는 것" http://omn.kr/1wksv).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사면·복권으로 세월호 유가족에게 대못을 박은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정쟁을 위한 비유의 대상으로 세월호 참사를 이용하는가. 유가족의 한 어린 외침에 돌아오는 답변이 고작 이거였나.
국민의힘은 3일 논평을 통해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소중한 국민들, 그리고 유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이런 비인간적인 비유로 그들을 두 번 울리는 일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역대급 막말에 대해 국민과 유가족 앞에 석고대죄하라"고 주장했다. 이번만큼은 국민의힘 논평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