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덕임이에게 별당의 배롱나무 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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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의 별당은 꽃의 대화가 무르익는 공간이다. 찬란한 햇살이 드리운 채 나무와 꽃이 살아 숨쉬는 곳. 이산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자, 내밀한 속내를 비치는 곳이다. 별당 바깥은 왕의 무거운 책무와 자신을 노리는 자들이 늘어서 있지만 별당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딴세상인 양 모든 것이 평화롭고 따스하다.
누구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그 이름, 한때는 다정했던 아비인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며 개 집 앞에 쪼그리고 앉은 이산과 덕임은 친구 같고, 연인 같고, 가족 같다. 왕과 궁녀의 위치는 조금씩 허물어진다. 이산은 덕임의 손을 이끌어 꽃나무를 보여준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꽃이 피었다. 아바마마께서 돌아가신 이후 처음이야. 뭔가 의미가 있는 걸까?"
의미가 있지.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순간, 그 어떤 것으로든 스며든다. 꽃나무는 이산과 덕임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준다. 너희들 마음이 나를 피워냈다고. 이때만 해도 이산은 몰랐겠지. 그저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던 그 꽃이 평생에 걸쳐 가슴에 박히는 사랑으로 피고질 것을.
이산이 보여준 꽃나무는 배롱나무다. 백일 동안 꽃이 피어 있다고 해서 목백일홍라고도 부르는데 사실 백일을 훌쩍 넘겨 일 년의 반쯤은 몽글몽글한 꽃망치를 매달고 있다. 어떻게 백일 동안이나 꽃이 피어 있는 걸까. 배롱나무는 가지 끝에 작은 꽃들이 모여 원뿌리 꼴의 한 송이 꽃을 피운다. 우리가 바라볼 때는 늘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작은 꽃이 피고지기를 반복하며 아름다움을 채워나간다.
나는 배롱나무를 보면 서운한 마음이 든다. 벚꽃은 짧은 찰나의 절정을 보여주면서 봄날의 시선을 다 가져가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배롱나무는 개화를 시작하는 여름철이 지나면 조금씩 잊는다.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나무의 비애랄까. 벚꽃이 빨리 지는 것은 모두 아쉬워하지만 배롱나무 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이는 많지 않다.
배롱나무는 여름이 되면 나무껍질이 벗겨지며 반투명하고 매끈한 결을 드러낸다. 수피가 겉과 속이 같은 표리일치를 보여준다고 해 '절개'를 상징하고, '충'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꽃말은 '부귀'인데 붉은 꽃을 피운다고 해서 '일편단심'의 의미도 지닌다.
임금이든, 조상이든, 님이든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고 싶을 때 배롱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궁궐이나 서원, 사찰, 제를 지내는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찰에 심은 것은 수행자들이 배롱나무의 매끈한 수피처럼 세속의 욕망을 떨쳐버리라는 의미에서다. 배롱나무는 다양한 해석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을 선택하고 잃어야 했던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