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peakpx
하지만 이 제도의 설계가 '세액공제'이며 본인 지출분만 공제 대상이고 배우자와 부양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잠깐만 생각해 보자. 본인 세금에서 깎아준다면 세금을 내지 않는 가사노동자, 학생, 취업준비생, 실업자 그리고 과세 대상 소득이 면세점 이하인 저소득층에게 이 제도는 아무런 혜택이 없는 제도다.
다시 말해 정치자금 세액공제 제도는 '경제활동인구'를 중심에 두고, 그중에서도 특정 액 이상의 세금을 내는 소득자를 중심으로 설계됐다. 따라서 이 제도를 주로 활용하는 사람은 중산층 이상, 중장년 이상의 남성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넓게 보면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에 위배된다. 정치 활동에 있어서 정치 자금은 피와도 같은 것인데 이 '정치적 수혈의 권리'가 특정 계층, 특정 성별의 유권자에게 치우치게 주어져 있다면 평등한 참정권은 이미 부정돼 있는 것이다.
'달러로 투표하기'와 '정치기본소득'
그럼 어떻게 하면 선거권이 있는 모든 유권자에게 동등한 '정치 자금 참여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까? 국가에서 모든 유권자에게 동등한 액수의 '정치 자금 쿠폰'을 먼저 발급하여 유권자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기부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이 아이디어는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브루스 애커먼(Bruce Ackerman)과 이언 에어스(Ian Ayres)가 공저한 <달러로 투표하기(Voting with Dollars)>(2002)에서 일찍이 제안됐다. 애커먼과 에어스는 선거가 있는 해에 유권자 1인당 50달러(patriot dollar, 애국 달러)를 나눠주고 지지하는 후보에게 후원할 수 있게 하자고 주장했다. 미사용분은 국고로 회수되며 후원금은 익명으로 전달된다.
투표일에 모든 표를 동등하게 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미국 시민은 정치자금 모금 결정에서도 지금보다 더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투표일에 똑같이 하나의 투표권을 받듯이, 그는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정치인에게 자금 지원을 해줄 수 있도록 특수한 신용카드도 받아야 한다. (<달러로 투표하기>)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2017년 '정치기본소득'을 제창했다. 강 교수는 <기본소득과 정치개혁-모두를 위한 실질적 민주주의>(2019)에서 이 생각을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18세 이상의 모든 유권자에게 매년 1인당 10만 원(공직선거가 있는 해에는 5~10만 원 증액)의 정치배당금을 지급하고, 이 돈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나 정당을 후원하게 하자는 것이다. 역시 미사용분은 국고에 귀속된다.
후원금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정치후원금 사이트에서만 접수받고 후원자는 익명으로 하되 후원자의 수와 후원금만 공개한다. 정치인 1인당 후원금 한도를 설정하고, 배당금의 일정 비율을 정당 후원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할 수 있다.
정치기본소득은 정치후원금을 내고도 세액공제로 전부 혹은 일부를 돌려받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고, 1인 1표를 넘어 1인 1원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기본소득은 정치후원금 세액공제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평범한 시민의 정치 냉소를 걷어내고 정치 참여 의식을 고취하며, 소수정당과 정치 신인의 정치 활동을 용이하게 하며, 정치인으로 하여금 돈이 아니라 민의에 반응하도록 만들 수 있다.
민주주의 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