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활동가들은 일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도서출판 사우
이런 계기로 활동가가 되었다니, 싶은 사연도 있다. 그러다 결국은 알았다. 그이들은 그저 이렇게 되었다고 지나가듯 이야기하지만 그 작은 계기 역시 사회활동의 하나였다는 것을.
누가 저런 일을 일부러 찾아서 하겠나.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 실천하고 있던 일이 훨씬 능동적인 자리로 옮겨 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쪽방촌 사람들, 이주 노동자, 장애인, 무연고자, 성적소수자 등 세상에서 소외받고 차별 받는 이들의 곁에 서 있다.
활동가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자고 끌어주는 사람이다. 순순히 끌려가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되겠냐며 팔짱 끼고 두고 보는 이도 있고 욕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앞장서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 그런데 아무도 앞장서지 않으면 사회는 정글의 법칙에 머물려는 속성이 있다. 그게 편하니까. 힘이 센 쪽으로, 쪽수가 많은 쪽으로, 그냥 늘 하던 대로, 버틴다.
힘의 균형을 바꾸기 위해 안간힘 쓰는 활동가들이 없다면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 채 살아갈지 모른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누리고 있는 크고 작은 변화는 그이들의 숨은 노력 덕분이다. 어느 날 갑자기, 불편한 관행이 없어져서 '세상 좋아졌네~' 신이 난다면 그건 활동가들의 치열한 투쟁으로 얻어낸 결과일 것이다. 당연한 건 없다.
이 책의 가장 특별한 점은 시민단체에서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활동보다 오롯이 활동가들의 생각과 삶을 들여다본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미 알려진 단체보다는 덜 알려진 작은 단체를 선별했다.
활동가 인터뷰의 경우 대부분 단체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활동에 방점이 찍히고, 사람은 딸려가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은 읽는 이의 관점에 따라 아쉬울 수도 있으니 궁금한 단체는 스스로 자세히 알아보길 권한다.
난 그게 좋았다. 어떻게 해서 이 단체에서 일하게 되었고 시민단체에서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면서 당신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매일 도망가고 싶어요, 하지만"
활동가의 입을 통해서 나온 이야기는 참 솔직하다. 이들은 굳이 자신의 상황을 꾸미지 않고, 답답한 마음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툭 터놓는다. 인생이 꼬였다고 말하는 이도, 자신을 미화하지 말아 달라 웃음 짓는 활동가도 있다.
"도망가고 싶을 때요? 매일 도망가고 싶은데 도망갈 곳이 없어서 못 간 거예요. 정말 어떻게 할 수 없을 때는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울기도 했어요." (p.60)
"처음에 일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일이 이렇게 힘들 거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좋은 일을 하는 곳으로만 생각했어요. 막상 활동해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p.33)
"저는 죽을 때까지 활동하는게 목표예요. 나이 들어서도 활동하려면 멘탈 관리와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일 때가 많아요. 내가 개입해도 바뀌는 게 거의 없을 때는 무력감을 느끼죠." (p.94)
글쓴이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경증의 청각장애 때문에 남의 말을 듣는 집중도가 높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감정을 과하게 넣지도 않고 그이들의 활동을 마냥 추켜올리지도 않는다. 적재적소에 지난 경험과 느낌을 담담하게 풀어놓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굳이 질문과 대답을 분리하지 않은 채 그저 편안하게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듣는다. 글쓴이가 활동가였던 시절, 물리적인 허기보다 무관심이 주는 허기가 힘들었다는 얘기가 인상 깊었다. 대부분의 활동가가 느끼는 허기가 아닐까.
활동가의 허기를 채워주는 건 사람의 관심이다. 하루하루를 소진하고, 나의 것을 오롯이 활동에 내어놓는 삶. 그렇다고 모두의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욕을 먹기도 하고, 오해가 쌓이기도 한다.
활동가들은 번아웃에 가까운 소진을 얘기하면서도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럼에도 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좋고, 활동이 좋다고 말한다. 활동가를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풀어낸 글쓴이의 노고에도 숙연해진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안절부절 못 하고 빚진 기분이 잔뜩 든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젊은 활동가도 눈에 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으로 교육감을 직선제로 뽑았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비영리 조직 업무의 디지털 전환에 몰두한다. 왜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가 장례를 치를 수 없는지, 정을 나눈 지인이 장례를 치르면 안 되는지 묻기도 한다.
생각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나도 이제는 빼박 중년이구나' 싶었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더 귀담아 듣게 되고, 조금씩 변화가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사회적인 이슈가 지금 세대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를 일이다.
"활동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어요. 일반적으로 활동가라고 하면 공익적인 일을 하고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는데, 저는 제가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에요. 저는 성소수자예요. 제가 차별받지 않으려면 성소수자 운동을 해야 해요. … 저는 그 어떤 활동도 다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p.148)
이런 이야기가 마음에 쏙 들어온다. 안심이 된다. 몇 년 전, 성북구 장수마을에서 활동하던 활동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마을 재생 사업과 장애인활동, 대안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고군분투한 이였다.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장애인보조 일까지 겸하고 있었다.
추모식장은 눈물바다였다. 많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늘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자신 또한 짐을 얹고 말았다는 회한이 끝없이 이어졌다. 억울하고 서글펐다. 유품으로 남긴 책을 지인들이 나눠 가졌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편으로 나는 간절히 바란다. '싸가지 없는' 활동가들이 대거 나오기를. 힘들면 쉬고, 못 해 먹겠다며 드러눕고, 대의에 따라 나의 삶을 갈아 넣지 않기를. 차라리 세상이 천천히 나아지더라도 말이다.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체계적인 매뉴얼을 만들었으면 한다. 안식월이나 안식년을 두고, 부담 없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조직적인 쉼'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우리의 유의미한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겠지. 이 책을 사서 읽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 세상에 맞서는 NGO 활동가 18명의 진심
문세경 (지은이),
사우,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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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바란다, '싸가지 없는' 활동가가 더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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