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일지라도 꾸준히 해내지 못한 것에 늘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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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되기 전에 수영법을 마스터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일도 생각난다. 유연성이 떨어져 접영에서 진전이 없던 나는 '감전된 갈치 같다'는 수영코치의 말을 듣고 그만두었다.
지인을 따라 데생도 배웠다. 중학교 때 화실을 다녔던 자신감으로 신나게 시작했지만 영 재미가 없었다. 사과만 3개월간 그리다 그만두며 '40년 동안 사과를 그렸다는 세잔(Paul Cézanne)은 정말 대단한 화가로구나' 싶었다.
프로 주부가 되고 싶어 다닌 요리 교실이나 꽃꽂이 교실, 아이들과 함께 다시 시작한 피아노, 운동 삼아 시작한 한국 무용, 발레…… 그동안 배우다 그만둔 것을 하나하나 손에 꼽다보니, 나의 인내심 부족과 끈기없음을 자책하게 된다. '좀 더 해볼 걸 그랬나?'
우리 사회에서 '끈기'는 중요한 덕목이다. '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기운'은 급격한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동력이기도 했으리라.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나이 오십이 넘은 우리 세대의 '개근상'이 아닐까.
학생의 미덕인 성실과 끈기를 출석으로 증명한 개근상은 우등상보다 값진 상이라고 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학교 가야지', '아파도 학교에서 아파라' 하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
나는 개근상을 타본 적이 없다. 감기만 들면 편도선이 심하게 부어 열이 올라 자주 결석을 했다. 결국, 고등학교 때 편도선 수술을 했다. 나는 건강상 이유로 개근상을 받지 못했는데, 마치 '너는 끈기가 부족하고 불성실하다'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듯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꾸준히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스스로 걱정했다. 그래서일까. 취미일지라도 꾸준히 해내지 못한 것에 늘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심혜경의 책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를 읽고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뭔가를 시작했다 금세 그만둬도 괜찮다. 그 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중략)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옳은 길을 되찾아 나오면 된다. 가야 할 길이 아니라면 아무리 멀리, 아무리 많이 걸어갔다 해도 미련 두지 말고 냅다 돌아 나오는 게 좋다. (34쪽)"
태극권, 클래식 기타, 바이올린, 옷 만들기, 뜨개질, 수채화, 데생, 펜화, 목공, 영화학교 등등 '프로 배움러'인 그는 꾸준히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치기 때문이라며 눙친다. 하지만 '마무리 짓는 기술'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뭐라도 건진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야무지게 마무리해야 회의감이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다 만 것들에 대한 새로운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