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란 문서의 내용이 적시된 디지털 주소와 소유권자 정보 등을 저장할 수 있는 형식의 디지털 권리증서를 말한다.
픽사베이
기성세대의 현실 부동산 장악, 젊은 연령층 메타버스 유행에 한 몫
메타버스가 난리다. 이건 또 뭔가 싶어 설명을 들어보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3D, 어떤 사람은 가상공간이 등장하는 인터넷 서비스. 사람마다 서로 다른 걸 메타버스라고 하는 것 같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한때의 시끄러운 유행어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요즘 나오는 메타버스에 대한 설명들을 자세히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두 가지 맥락이 담겨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가상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생활이다. 정리하자면 3D든, 2D든 표현 양식은 중요하지 않다. 가상공간에서 우리의 삶이 보다 폭넓게 생활처럼 이어지는 어떤 변화를 메타버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1992년 처음 등장한 이 단어가 갑자기 유행을 타고 있는 배경에는 시기적으로 잘 맞아 떨어진 몇 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있다. 첫 번째 요소는 VR, 3D 등 가상공간을 좀 더 실감나게 구현하는 IT 기술들이 어느 정도 수준의 완성도를 이뤘고, 이 기술들에 높은 감수성을 지닌 젊은 세대들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보기 좋은 가상공간 화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두 번째 요소는 기성세대들이 오프라인에 있는 공간(부동산)을 상당 부분 장악했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의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꼽히는 로블록스ROBLOX나 네이버가 만든 제페토ZEPETO를 들어가 보면 대부분의 이용자층이 10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로블록스는 아예 주 이용자층이 9세에서 16세다. 현재 일일 4200만 명의 사용자가 하루 평균 2시간 30분을 로블록스에서 머문다.
어느 사회나 10대는 자기 공간을 보유하기 가장 어려운 부동산 취약층이다. 지금의 메타버스 열풍은 이들이 대거 광활한 가상공간으로 몰려가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전 세계적으로 접촉 대면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이런 메타버스의 유행에 한 몫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메타버스 내에 독립적인 경제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 환경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우리가 오프라인 세계에서 영위하는 삶을 가상공간에서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가상공간 내에서의 경제활동이 가능해야 하는데, 최근 블록체인 기술과 대체불가능토큰NFT, non-fungible token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됐다.
NFT, 정부가 없는 가상공간의 디지털 권리증서
NFT란 문서의 내용이 적시된 디지털 주소와 소유권자 정보 등을 저장할 수 있는 형식의 디지털 권리증서를 말한다. 증서 소유자가 타인에게 소유권을 넘길 수는 있지만, 증서 자체는 블록체인 위에 저장되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임의로 삭제하거나 위조할 수는 없다. 실제 오프라인 세계로 치면 정부가 관리하는 부동산 등기소에 등록된 집문서나 땅문서랑 비슷한 개념이다.
그동안의 고질적인 문제는 가상공간에 이런 권리증서의 효력을 보증해주는 정부라는 개념이 없다는 거였다. 기본적인 권리 보증이 안 되니, 가상공간에서는 경제의 기본이 되는 자산이 형성되기가 쉽지 않은 조건이었던 것이다.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가상공간과 실제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는 생활이 가능해야 하는데, 가상공간에 자산이 성립하지 않으면 현실 세계의 부를 가상공간에 옮길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사람도 가상공간으로 생활공간을 옮기기 힘들다. 이게 그동안 메타버스 담론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렇다 할만한 설득력을 갖지 못했던 숨은 이유다.
그런데 NFT가 등장하면서 이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NFT는 블록체인이라는 간단한 장치 하나만 있으면 가상공간에서도 여러 가지 자산들의 권리관계를 안전하게 증명할 수 있다. 오프라인 부동산처럼 자산의 희소성을 보장하면서 원본성을 증빙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가상공간에 형성되는 모든 자산을 NFT를 이용해 정리해 나간다면 종국적으로는 실제 세계와 비슷한 체계를 가진 새로운 성격의 가상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결국 NFT로 통일될 수밖에 없는 이유
현존하는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모두 NFT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제페토는 '코인'과 '젬'이라는 자체 화폐를, 포트나이트는 '브이벅스', 로블록스는 '로벅스'라는 가상자산을 이용해 가상공간 내에서 물건을 사고 팔거나 용역 등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 과거 싸이월드에서 사용자들이 홈페이지를 꾸밀 때 사용했던 '도토리'와 유사한 개념들이다.
이런 유명 메타버스 플랫폼들은 이미 상당수의 사용자들을 기반으로 경제 생태계를 어느 정도 구축했기 때문에 서비스 내 자산이 어느 정도 금전적인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가령 명품 브랜드 '구찌'는 최근 로블록스 안에 '구찌 가든'을 개설하고 이곳에서 한정판 가방을 475로벅스(한화 약 6200원)에 판매했는데, 이게 사용자들 사이에 거래되면서 한 때 35만로벅스(한화 약 460만 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 기반 자산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다. 서비스 사용자 숫자가 줄어들거나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경우, 서비스 경제 생태계도 함께 무너진다는 것이다. 메타버스는 이제 막 관심을 받기 시작한 신종 산업이고, '메타meta'로 사명을 변경한 페이스북 등 강력한 경쟁 기업들이 진입을 앞두고 있다.
로블록스가 지금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치열한 사용자 쟁탈전이 벌어질 경우 로벅스의 가치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로블록스에서 구매한 자산을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옮길 수도 없다. 과거 SK커뮤니케이션이 싸이월드의 지속적인 운영에 실패하면서 이용자들이 구매했던 도토리가 경제적 가치를 잃어버렸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물론 NFT도 블록체인 플랫폼이 망가져서 더 이상 블록이 생성되지 않을 경우에는 경제적 가치에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블록체인에서 NFT는 부가적인 기능 중 하나에 불과하고, 유력한 몇몇 블록체인들은 체인 자체의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플랫폼 자체에 지장이 생기는 일은 쉽게 발생하기 어렵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NFT 플랫폼인 이더리움 같은 경우는 24일 기준 시가총액 규모가 576조 8200억 원에 달한다. 로블록스 시가총액(한화 69조 9000억원)의 8.3배다. 결국 로블록스 등 메타버스 전문 기업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의 포인트만으로 가상공간 내에 자산과 재화를 구축하기 보다는 플랫폼 안정성과 외연 확장을 위해 암호화폐 블록체인에 엮여 있는 NFT를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