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폐지 줍는 할머니의 집 앞에 붙은 대자보.
최원석
며칠 전 할머니께 폐지를 드리려고 할머니 집을 찾았다. 두 손에는 언제나처럼 박스가 여러 개 들려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할머니의 집의 풍경이 여느 날과는 많이 달랐다. 박스를 정리하고 계실 할머니의 모습 대신에 이상한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원래라면 쌓여 있어야 하는 폐지들도 깨끗이 치워진 뒤였다. 할머니께서 사시는 집은 알고 있지만 할머니의 전화번호는 몰랐다.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알 수조차 없는 일이다. 이제 폐지를 줍지 않으신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일, 다시 박스들을 챙겨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폐지를 다시 가져와서 집 앞에 두면서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번에 폐지를 가져다 드릴 때까지도 그만두신다는 말씀이 없었던 터라 할머니의 근황에 더 의문이 들었다. 이곳에 이사를 온 지 8년째, 할머니께서 쉬시는 날을 본 적이 없었기에 더 의아했다. 명절조차 할머니는 쉬지 않으셨기 때문에 더 의문이 들었다.
"아. 아빠요. 내 말을 잘 들어보소. 연말 연초나 설 명절이 되믄요. 이게 더 바쁜 기라. 왜냐하믄 박스 선물이 많이 들어온다 아닙니꺼. 그라믄 알맹이만 빼고 버린다 아닙니꺼. 이게 또 재질이 좋은 종이 재질이라 대우를 더 쳐 준다 아닙니꺼. 설이나 명절 때는 이래서 더 자주 길을 디비는 겁니더. 다 이유가 있지예."
"다른 할매, 할배들도 이걸 압니더. 그래서 더 전쟁인기라. 이래가 명절에는 더 피가 튀기는 겁니더. 다른 사람들 쉬는 날들 있지예. 그때 더 폐지가 많이 나온다 아닙니꺼. 평일보다 우리는 남들 쉬는 날이 더 바빠예. 아유. 설 연휴는 말할 것도 없지예."
대문 앞에 박스를 놓으며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몸이 편찮으실 정도가 될 때까지 추운 날, 궂은 날에도 쉼 없이 일하시던 할머니의 평소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내가 가져다 드린 박스들은 몇십 원, 몇백 원의 가치일 뿐이지만 할머니께는 이 일이 생계이실 텐데라는 걱정이 들었다. 앞으로는 이 조차 못하실 거라고 생각하니 걱정이 더 깊어졌다.
수고스러워도 할머니의 집 앞을 일부러 찾았던 이유는 이제 사라졌다. 할머니께 폐지를 가져다 드리지 않아도 되니 일거리가 하나 줄어든 것이다. 폐지를 더 이상 주워 모으지 않아도 되는 것도 어찌 보면 고민과 일거리가 하나 줄어들어 다행인 셈이다. 하지만 이제 아이의 물건을 당장 어떻게 택배 포장해서 보내야 할까라는 고민이 추가되었다. 할머니께서는 이렇게 큰 역할을 지금까지 해주셨구나라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