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숨을 걸고 새 목숨을 만난 엄마는 출산으로 지친 몸으로 힘이 하나도 없는데 갓 태어난 생명 앞에 가장 힘을 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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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신문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출산 후 산후우울증을 포함한 우울감을 경험한 여성은 75.1%로 나타났습니다. 2020년 기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자료에도 보면 보건소에서 산후우울증 고위험군으로 판정받은 산모는 8,291명으로 2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하고요. 출산한 여성 10명 중 2명은 산후우울증을 앓는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수치는 실제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정도와 기간의 차이일 뿐 대부분의 여성은 아이를 낳고 우울감을 느끼거든요. 제 주변 모든 이들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산후우울증을 제대로 치료받은 산모는 드물고 '우울하다'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려집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시구처럼 모두 우울을 품고 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게 여전한 현실인 거죠. 그냥 우울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너무도 흔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자신마저도 부정하고 싶은 증상. 아마도 유별, 예민, 이상(異常)이라는 인식이 우울이란 단어 앞에 여전히 따라 붙어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저는 '산모는 일종의 환자'라고 생각합니다.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처음 여성의 몸에 수정란이 착상해 배아에서 태아로 열 달의 발달 과정을 거쳐 배 밖으로 나오기까지 엄청난 신체 변화와 증상, 고통을 거칩니다.
출산 후 호르몬 변화와 함께 인대와 관절은 다 늘어나 있고 회음부 손상 혹은 개복으로 인한 통증 등으로 일상생활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죠. 똑바로 걷거나 앉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줄은 저도 몰랐으니까요.
그런 상태에서 산모는 신생아 돌봄이라는 일생일대의 미션을 수행해야 합니다. 저도 갓난아이를 안고 집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감정은 행복과 환희가 아니라 허둥지둥과 우왕좌왕이었어요. 이 작고 여린 생명체 앞에서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당황스럽고, 걱정되더라고요.
내 목숨을 걸고 새 목숨을 만난 엄마는 출산으로 지친 몸으로 힘이 하나도 없는데 갓 태어난 생명 앞에 가장 힘을 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합니다. 2, 3시간 간격으로 먹이고, 끊임없이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고 보살피느라 엄마는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쉬지 못해요.
눈을 뗄 수 없고 곁을 떠날 수 없는 아이 앞에서는 제대로 볼일을 보는 일도 어렵고 밥 한 끼를 챙겨 먹는 것과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렵죠. 집이 감옥 같이 느껴져요.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충족이 잘 안 되는 하루하루가 반복됩니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느라 엄마는 먹지 못하고 씻지 못하고 자지 못합니다. 집에서 가장 더러운 건 내 몰골 같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내 커리어를 위해 일하고 돈 벌고 사회 속에서 관계 맺고 인정받고 활동했던 한 여성은 한순간 이 모든 움직임과 교류가 끊어져 버립니다.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받아요. 무엇보다 지금의 이 상태가 계속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다시 일할 수 있을까? 다시 예전으로 몸도 마음도 회복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잘 살아가야 하는데, 잘 살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되는 거죠. 아프고 힘들어서요.
신생아를 키우는 시간은 출구 없는 원을 무한히 도는 것 같았어요. 아이를 안고 세상과 고립된 느낌. 그 원을 따라 우울이라는 테두리가 쳐집니다. 우울이 산후를 만나면 갓 태어난 생명이 기쁨이 아닌 절망이 될 수도 있어요.
마음에 흐르는 우울을 알아차리고 꺼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