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부터 2019년까지 뮌헨-프라이싱 대교구 관할 지역에서 벌어진 사제와 교회 관계자들의 아동과 취약한 성인을 대상으로 자행한 성추행' 보고서 표지.
베스트팔 슈필커 바스틀 법무법인
독일의 뮌헨-프라이싱 대교구(Erzbistum München und Freising)가 베스트팔 슈필커 바스틀 법무법인(Anwaltskanzlei Westpfahl Spilker Wastl, WSW)에 의뢰해 조사한 사제 성추행의 전모에 관한 보고서가 지난 20일 발표됐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독일의 모든 언론이 이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1945년부터 2019년까지 뮌헨-프라이싱 대교구 관할 지역에서 벌어진 사제와 교회 관계자들의 아동과 취약한 성인을 대상으로 자행한 성추행>(Sexueller Missbrauch Minderjähriger und erwachsener Schutzbefohlener durch Kleriker sowie hauptamtliche Bedienstete im Bereich der Erzdiözese München und Freising von 1945 bis 2019)이라는 긴 제목만큼이나 1893페이지에 이르는 이 4권으로 이뤄진 보고서다.
이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5명의 변호사들은 "책임자, 조직적 원인, 결과, 그리고 제언"(Verantwortlichkeiten, systemische Ursachen, Konsequenzen und Empfehlungen)를 부제로 달았다(참조: https://westpfahl-spilker.de/wp-content/uploads/2022/01/WSW-Gutachten-Erzdioezese-Muenchen-und-Freising-vom-20.-Januar-2022.pdf ).
이 보고서에서 다룬 피해자는 497명이고 가해자는 235명의 사제와 교회 관계자들이다. 이러한 사제 성추행이 무려 70년 넘게 자행돼 왔지만 이제야 그 흑역사의 일부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문제는 사제가 아동을 성추행하고 성폭행 한 사실 자체만이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 곧 교구장 주교가 이를 은폐하고 무마하려고 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됐다. 더구나 그런 기만행위에 가담한 이로 의심받는 인사가 다름 아닌 베네딕토 16세 교황이다.
그가 요제프 라칭거 대주교라는 이름으로 뮌헨-프라이싱 대교구 교구장으로 재임하던 1977년부터 1982년 사이에 벌어진 사제 성추행 사건을 인지하고도 합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난에 대해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처음에는 부인했다. 그러나 그가 페터 H.(Peter H.)라고만 알려진 신부의 아동 성추행 문제를 다루기 위해 1980년에 개최된 대책회의 참석했다는 확실한 정황이 제시되자 흔들리는 모양새다.
더욱 큰 문제는 현재 교구장인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도 최소한 두 건의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무마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사제 성추행의 숫자는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제들이 과거에 비해 도덕적인 인격을 가지게 돼서가 아니라 사제의 절대 숫자가 급감한 데 따른 것뿐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숫자가 밝혀진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요 근거로는 독일 가톨릭 교회가 프랑스 가톨릭 교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상식적 판단을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는 독일보다 먼저 사제 성추행에 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수십만 명의 피해자를 확인하게 됐다. 2021년 가을에 발표된 프랑스의 사제 성추행 조사위원회(CIASE)의 위원장인 사브(Jean-Marc Sauvé)는 프랑스 가톨릭 교회의 사제와 관계자들이 자행한 성추행의 피해자가 33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그 가운데 21만6000명은 아동과 청소년이었다. 피해자의 80%는 10살에서 13살 사이의 아동이었고 20%는 여자였다. 문제는 어마어마한 피해자의 숫자만이 아니라 그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정황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피해자들이 사제를 유혹했다는 누명까지 씌었다. 기가 막힌 것은 대부분의 가해자가 사망했거나 공소시효가 지나서 법적으로 처벌할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프랑스 조사위원회가 작성한 2500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는 2018년에 프랑스 가톨릭 교회가 이 위원회에 위탁한 작업의 결과다. 이 보고서가 나오자 프랑스 주교회의 의장인 물랭-보포르(Éric de Moulins-Beaufort) 대주교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앞으로도 관련 사건을 고발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독일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가톨릭 교회는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충분한 피해 보상 조치를 취하는 데에는 여전히 미적거리고 있다. 문자 그대로 립서비스만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어떤가? 미국의 가톨릭 사제도 예외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동 성추행을 자행했다. 2016년 아카데미상 각본상과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의 주인공인 <보스턴 글로브>(The Boston Globe) 신문의 기자들이 아니었다면 미국 가톨릭 사제의 성추행 사실은 여전히 어둠 속에 묻혀 있었을 것이다.
이 영회에서 묘사한 사제 성추행 사건은 실제로 미국의 보스턴 지역의 가톨릭 사제들이 자행한 성추행 사건을 2003년에 <보스턴 글로브>가 기사화한 것이다. 이 사건이 기폭제가 돼 미국 전역의 가톨릭 교구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고 사제 성추행은 일부 사제의 일탈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조직적으로 벌어진 범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 사제 성추행은 미국인만이 아니라 아일랜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아동들을 대상으로도 자행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에서도 주교들이 이 사건의 피해자들을 돕기보다는 사제들의 죄를 은폐하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이다. 유럽의 가톨릭 교회와 똑같은 모습을 미국의 가톨릭 교회가 보여준 것이다. 사제 성추행 자체보다 바로 이런 전 세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자행된 범죄 은폐가 가톨릭 교회의 위신을 더욱 떨어지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