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극장 폐관 전 모습
장혜령
반면 극장은 지금 겨우 버티고 있는 중이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는 지난해 관람료를 천원 올리는 등 크고 작은 결정을 내렸다. 또 관객들을 붙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극장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스트리밍 시스템을 버리고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불편한 극장으로 관객들을 끌어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단 단숨에 관객을 유입하는 데 효과적인 공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대형극장 3사 모두 무료, 할인 쿠폰을 영화 개봉에 앞서 진행하고 있다. 굿즈 없이 돌아가면 손해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다양한 선물도 뿌리고 있다.
영화별 포스터, 핀 버튼, 엽서, 오리지널 티켓 등 수집에 열 올리는 마니아를 공략하고 있다. 하지만 굿즈는 대부분 영화 수입, 배급사에서 만들어 극장에 제공하기에 작은 영화일수록 굿즈 제작비를 따로 마련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일련의 상황들을 토대로 생각해봤다. 아마도 앞으로 극장은 특별 포맷 상영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서비스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최근 IMAX로 개봉한 SF 영화 <듄>이나 마블, DC 등 히어로 장르, 큰 화면에서 생생함을 즐기는 블록버스터, 극강의 사운드를 즐기는 돌비 시네마, 체험형 상영 시스템인 4DX나 스크린X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야말로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는 수고롭겠지만 극장을 찾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정하긴 어렵지만, 시간과 발품을 팔아서라도 새로운 시각과 소재의 영화를 만나고 싶어 하는 관객의 욕구를 채워 주는 식으로 극장은 바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극장 내 상업 영화의 독과점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멀티플렉스 입장에서 따져보면 독립, 다양성, 예술 영화보다 소위 '돈 되는 영화'를 틀어 좌석 점유율을 높이고 싶을 거다.
제2의 봉준호, 윤여정, 오영수가 나오려면...
이 모든 것에는 자본의 논리가 반영되어 있다. 앞선 이야기는 상업 영화에나 해당하지, 작은 영화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해 8월 31일, 서울극장이 4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유명했던 서울극장-피카디리-단성사로 이어지는 트라이앵글 루트가 무너진 것이다.
서울극장은 오래된 시설을 바꾸고 다양성 영화나 재개봉작을 틀며 버티고 버티다가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극장은 폐관을 앞두고 3주간 무료 상영회를 열며 관객과 기억을 공유했다. 그때 사람들은 무서워지는 변화와 사라지는 역사를 아쉬워했다. 더불어 KT&G 상상마당 시네마도 경영난에 운영을 중단했다가 올해 1월 재개관이란 기지개를 폈다.
세상에 다양성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선택지 없이 하나만 일방적으로 취해야 하는 전체주의는 위험하다. 스트리밍은 그렇다 치고 극장이란 공간에서만 공유되는 추억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점차 극장을 목표로 한 영화들은 줄어들고 회차를 늘려 웹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는 자나 깨나 '극장'이다.
최근 CGV 아트하우스 3곳이 일반관으로 전환되면서 비수도권 관객들은 강제로 관람권을 박탈당했다. CGV 아트하우스는 2004년 무비꼴라주라는 이름에서 출발해 독립영화감독과 배우를 양성하고 알리며 거대 배급 시스템에서 밀려난 영화를 상영했던 상징적인 시스템이었다. 호기롭게 출발 했던 사업이 코로나로 무너지고 있다.
다양성 영화의 메카였던 압구정 아트하우스 2관 중 1관은 일반관으로 전환되었고, 피카디리 아트하우스는 그 자리에 클라이밍 시설이 들어섰다. 영화제 수상, 예술성 짙은 영화들이 갈 곳을 잃어 방황하고 있고, 보고 싶어도 볼 곳 없는 관객들은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동네에 예술영화관이 있어 자랑스러웠던 필자도 1시간 넘는 타지역에서나 보고 싶은 영화를 만나볼 수 있게 되어 괴롭다.
소위 잘 팔리는 영화만 쫓는다면 제2의 봉준호나 윤여정, 오영수 같은 이름은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다. 이들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차근차근 쌓아온 필모그래피와 이를 알아봐 주는 관객, 그리고 극장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