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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가족에게 상처 받은 마음, 이렇게 해봅시다

[서평] 송주연 지음 '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

등록 2022.02.05 15:11수정 2022.02.0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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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은 결혼하고 벌써 일곱 번째로 맞이하는 명절이었다. 결혼 후 우리 부부가 명절에 시가에서 차례를 지내고 친정에 들르는 식의 관례를 따르지 않기로 결정한 지도 거의 5년이 넘은 것 같다. 명절에는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고, 혹은 각자의 본가에 가서 원래의 방식대로 명절을 지내기도 했다. 이번 설 연휴에도 나는 친정에, 남편은 차례를 지내는 시골 큰집에 가기로 했다.

설 전에 혼자 집에 가겠다고 부모님에게 연락을 하니, 올해도 어김없이 똑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우리 집은 안 와도 되니까, 시댁에 같이 가지 그러니." 내가 '남들처럼, 다른 며느리들처럼' 살지 않는다는 사실에 가장 불편해 하는 건 나의 부모님이다. 몇 년째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실랑이에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내 버렸다.


"엄마 아빠는 왜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주지 않아?"

부모님이 나를 정말 사랑한다는 사실은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부모님이 사랑을 이유로, 내 삶에 대하여 나를 대신해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인지 혼란스럽다. 부모님이 살아온 방식이 부모님에게는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순리대로, 둥글게 살아"라는 진심이 담긴 조언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오롯한 내 삶에 대한 존중과 응원이었다. 비록 가족이지만, 우리에게는 한 걸음 밖에서 서로의 삶을 지켜보며 존중해주는 법이 필요했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선을 지키는 법
 
 송주연 지음 '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
송주연 지음 '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 한밤의책
 
나는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관계를 맺는 것이 익숙하고 편안하다고 느끼지만, 부모님과 나의 관계에서 그 선을 찾는 것은 늘 어렵게만 느껴졌다. 내 마음도 편하고 부모님에게도 미안하지 않은 중간 지점은 어디쯤일까. 송주연 작가의 <이 선 넘지 말아줄래요?>를 읽으면서 나는 그 거리감을 다시 한 번 조율해 보게 됐다.

<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는 나를 가로막는 것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나를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나라는 유독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자칫 '정'을 내세우며 상대방의 경계를 침범하는 일도 많은 듯하다.


이 책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고 진짜 내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 다양한 관계에서 정중하게 선을 긋고,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 다른 사람이란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만나는 여러 타인들일 수도 있겠지만 심지어 가장 가까운 내 가족도 포함된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대전제를 이해하기 때문에 부모님은 늘 정당하고 옳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부정할 때 생기는 내 마음에 죄책감을 갖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책에서 소개한 내용 중 정신분석학자 피터 포나기가 개념화한 '정신화'라는 능력이 와 닿았다. 이는 나와 타인의 마음을 성찰하듯 바라보는 능력이라고 한다. 내 마음을 조망하고, 다른 사람 역시 나름의 이유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한 이해가 타인과 나의 관계를 연결하고 가깝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각자를 독립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타인의 마음에도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음을 이해하는 정신화 능력은, 이처럼 부모와 자녀 사이에 적절한 선을 만들어 준다. 이는 서로를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며 독립된 한 사람으로 대하게 한다. 정신화 능력을 갖춘 사람은 나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성찰할 수 있다. 또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기 때문에 쓸데없이 타인의 감정에 책임을 지거나 불필요한 죄책감을 떠안지도 않는다. 물론 자신의 마음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지도 않는다. (121p)
 
우리는 각자 존재한다


결혼식에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주례사로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가 있다. 아마 책에도 언급되었듯 우리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가족주의'에 기반하여 보편적으로 가족은 곧 하나의 개념이라 여기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부부 간에도 그가 내가 아니며 내가 그가 아니라는 별개의 감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결코 완전히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주의 사회에서는 개인보다 가족 그러니까 '나'보다 '우리'가 중요하다. 때문에 '나'는 온전한 한 사람이기보다는 '우리' 안에서의 역할로 존재한다. (중략) 이런 태도는 가족 안에서 너와 나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가족 구성원의 삶을 마치 나의 삶처럼 여기는 지나치게 밀착된 관계를 만들어낸다. (213p)

밀착된 공동체로서의 가족이 익숙한 우리에게 가족도 별개의 존재라는 말이 다소 냉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먼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말로 이해했다. 

내 선을 넘어오는 것을 자꾸 허용하다 보면 나보다는 남이 원하는 나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성장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계에 휘둘리고 상처받지 않던가. 그때 잠시 한 걸음 물러나, 나를 안전하게 만드는 선은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결혼 후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과 관련된 부모님과의 갈등에서 나는 여전히 물러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이 가족 내의 역할이나 부모님의 기대치에 앞서 나를 나답게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를 독립된 개체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연습이 우리에게는 계속 필요할 것 같다.

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 - 나를 지키는 거리두기의 심리학

송주연 (지은이),
한밤의책, 2021


#결혼 #서평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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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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