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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 4] 정의구현사제단이 원주에서 고고성을 울리게 된 배경

등록 2022.02.03 15:39수정 2022.02.0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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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관람 후  전태일 모친 이소선 여사와 함께 사회적 약자와 가까이하고 사랑을 몸소 실천한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관람 후 전태일 모친 이소선 여사와 함께사회적 약자와 가까이하고 사랑을 몸소 실천한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 김수환 추모 홈페이지
 
한국천주교는 전래과정에서 혹독한 탄압을 받고 수많은 순교자를 내는 등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외국인 주교들의 친일성향과 3ㆍ1혁명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 그리고 이승만 정권기 일부 주교 등의 일탈된 행위로 인해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고, 내부에서도 지나친 보수화에 반발이 따랐다.

그러던 천주교가 김수환 추기경의 등장과 함께 대사회 발언이 시작되고 특히 박정희가 3선개헌을 강행, 영구집권의 야심을 보이면서 본격적인 대정부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 1969년 김수환 추기경이 명동성당에서 크리스마스 메시지(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예언자적 비평의 입장에서 발표(발표 도중 갑자기 TV중계가 중단되었다).

▲ 1968년 강화도 신도직물의 노사분규에 따른 가톨릭노동청년회의 역할 증대 및 뒤이어 한국모방, 전태일 분신자살사건, 김진수 드라이버피살사건 등의 노동문제에 대한 가톨릭교회 발언의 에스컬레이터.

▲1969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추기경이 밝힌, 공명선거 분위기를 위해선 양심에 따른 사제들의 참관 허용도 가능하다는 발언.

▲1972년 7ㆍ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뒤에 김추기경이 언급한 <총화를 위한 비상사태 선언과 보위법과 정보정치의 철회> 등 5개항 대정부 자세 표명.

▲1973년 12월 16일 YMCA 강당에서 인권주간에 즈음한 김추기경의 헌법문제에 대한 발언.
 1975년7월20일, 지학순 주교(가운데 꽃다발 쓴 이)와 김지하 시인(지 주교 오른쪽)이 환영인파와 함께 원동성당을 향해 가두행진 중이다.
1975년7월20일, 지학순 주교(가운데 꽃다발 쓴 이)와 김지하 시인(지 주교 오른쪽)이 환영인파와 함께 원동성당을 향해 가두행진 중이다.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천주교의 '사회정의를 향한 몸부림'은 지학순 주교가 시무하는 원주교구에 점화되었다. 여기에는 천주교의 총본산인 로마 바티칸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움직임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공의회를 개최한 교황 바오로 6세는 "구제해야 할 것은 인간이며 개혁해야 할 것은 인간사회"라고 밝히면서, "전 세계의 주교들이 그들 나라의 교구로 돌아가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회상에서 벗어나 각자의 교구가 속해 있는 지역과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적극 참여하라"라고 촉구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한국 천주교를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바티칸공의회가 끝나고 교황청에서는 강원도를 관할하는 춘천교구를 분할해 강원도 남쪽에 원주교구를 설정했다. 원주교구 관할 지역은 인구 1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원주와 영월, 삼척 등 산악지역과 탄광 지역, 농어촌 지역 정도였다. 지역적으로는 교통의 오지이며, 문화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지역이었다.
 
 1973년 11월 5일 시국선언을 준비 중인 재야인사들. 정중앙 태극기 아래에 있는 이가 한신대 설립자인 장공 김재준 목사. 함석헌, 김지하, 계훈제, 천관우, 지학순 주교, 법정스님의 모습도 보인다.
1973년 11월 5일 시국선언을 준비 중인 재야인사들. 정중앙 태극기 아래에 있는 이가 한신대 설립자인 장공 김재준 목사. 함석헌, 김지하, 계훈제, 천관우, 지학순 주교, 법정스님의 모습도 보인다. 동아일보
 
1965년 3월, 교황은 한국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현장을 실천할 신부로 44살의 젊은 신부 지학순을 선택해 초대 원주교구장으로 임명했다. 그해 6월 원동성당에서 원주교구장에 착좌한 지학순 주교는 사목지침을 '빛이 되어라!'로 정하고 교회가 민중의 편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고, 세상의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해야 한다는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민주화의 성지가 전라도 광주였다면 1970년대는 강원도 원주였다. 지학순 주교는 인권운동가 장일순과 손잡고 반독재ㆍ반부패ㆍ민주화를 이끌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원주에서 고고성을 울리게 된 배경이다.


주석 
1> 윤일웅, <유신정권과 정의구현사제단>, <유신체제와 민주화운동>, 90쪽, 춘추사, 1984.
2> 김삼웅, <장일순 평전>, 127~128쪽, 두레, 2019.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김수환추기경 #지학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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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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