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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정선 버스 끊긴 지 2년... 내가 못 하게 된 것들

점점 줄어드는 지역 대중교통... 일흔 넘은 엄마와 어르신들의 일상이 걱정입니다

등록 2022.02.13 17:17수정 2022.02.1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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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앞둔 지난 1월 28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귀성객들이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020년 3월, 코로나19로 강원도 평창 시골집(본가)으로 가기 위해 이용했던 버스 노선이 끊겼다. 이전에는 내가 사는 제천에서 정선으로 가는 완행 버스가 운영했고, 중간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갈아타서 갈 수 있는 버스들도 있었는데, 이젠 그것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사실 완행 버스 노선의 감축 운영은 지난 2019년 9월부터 이미 진행됐다. '이용 수요(1일 평균 5~6명) 미비' 등의 이유였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노선마저 수익 문제와 승무사원 근로시간 단축, 휴게시간 보장 등의 이유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버스 노선이 없어지자 불편한 현실을 그대로 체감하게 됐다. 답답한 마음에 버스 회사 측에 재개 운행 계획을 문의해보기도 했지만, '이용 수요 미비로 당사에서 더 이상의 운행은 불가하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대중교통의 실종이 우리의 삶에 미친 영향은 컸다. 지난 2년, 집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어쩌다 집에 갈 때는 택시를 타거나, 아니면 기차를 타고 영월을 거쳐 다시 시내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그러나 기차 시간이 변경되면서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집에 거의 가질 못했다.

매번 택시를 타기에는 돈이 만만찮았고 기차를 타기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평소 대중교통만 이용하던 나에게 대중교통의 실종은 가장 큰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1주에 한 번씩 가던 시골집을 못 가게 생긴 것이다.

버스가 끊기기 전까지는 최소 1주에 한 번씩은 평창 본가에 가서 시골 소식도 전해 듣고 우편물을 확인하고 엄마 가게도 도왔는데... 나이든 엄마가 제일 걱정이었다. 

'젊은이'가 없으면 손발이 묶이는 어르신들


엄마는 시골에서 55년째 가게를 하고 계신다. 올해 76세로 연세가 있음에도 가게 일을 놓지 못하고 계속 하신다. 무릎 관절염으로 힘들어 하실 때마다 '그만두라'고 잔소리 하지만, 그것도 고문인 것 같아 도와주자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그 후 매주 주말이면 본가로 가서 도와 드리곤 했다. 

갈 때마다 엄마만 도와드리는 것은 아니다. 시골에는 대부분 노인들만 계셔서 이웃 노인들 자잘한 일은 내가 다 봐주고 있다. 내가 한번 가는 날이면 동네 어른들은 기다렸다는 듯 물건을 주문하고 밀린 우편물도 들고 온다. 버릴 건 버리고 해결해줄 건 해결해 준다.

근로장려금을 신청해주고 통장 잔고를 확인해주기도 한다. ATM 기계에서 송금하는 일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어떨 때는 고장난 TV를 고쳐준다. 고장났다기보다는 조작 오류나 밀린 공과금을 내지 않아 방송이 끊긴 경우가 대부분이라, TV가 안 나오는 원인을 알려주고 방법을 강구하는 게 내 임무다.  

지난 봄에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던 이웃 어른의 퇴직금을 6년 만에 어렵게 받아낸 적이 있다. 어르신이 글을 잘 읽지 못하시는데, 신기하게도 돈 받는 내용의 우편물은 용케 버리지 않고 가져온다. 전화로 본인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상담원이 본인 여부를 물었으나 귀가 안 들리는 어르신이 계속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나는 큰소리로 "할머니, (전화기를 가리키며) 여기다 대고 '네' 하세요"라고 말했지만 어른은 "뭐라고? 안 들려!" 소리만 계속했다. 그런 우리의 대화가 무한 반복 이어졌다.

상담원은 우리 둘의 답답한 대화를 한참 동안이나 듣고 있다가 결국 "네, 알겠습니다. ***님 맞으신 거죠" 하면서 본인 확인을 끝내버렸다. 신청이 완료되자 나는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OK 사인을 보냈고 그제야 어르신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이렇듯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시골을 가야 하는데 버스가 끊기는 바람에 이전처럼 자주 갈 수 없게 됐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해 줄 일도 많은 나의 시골 선행도 그대로 멈춰버렸다.     

전화로만 들을 수밖에 없는 엄마의 안부

코로나가 장기화 될 조짐이 보여 작년 처음으로 엄마에게 스마트폰을 개통해 드렸다. 사용법을 알려줬지만 익숙하지 않아 겨우 전화를 걸고 받기만 하신다. 올해 초 코로나 지원금을 신청할 때 제일 힘들어 했다.

내가 신청을 하면 엄마는 본인 인증 확인 문자를 불러줘야 하는데 문자 보는 법이 익숙지 않아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물건을 팔러 온 젊은이인 제3자까지 동원해 나와 동시에 전화를 연결해 겨우 본인 인증을 해결했다.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졌지만 엄마도 나도 이젠 익숙해져야 할 일이었다.      

몸은 비록 타지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시골에 있는 나였다. 시골에 자주 가고 시골 생활을 오래 했던 터라 시골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1주에 한 번씩 가서 듣던 소식을 이젠 전화를 통해 듣는다.      

늘 나랑 같이 놀았던 아무개 할머니가 치매 증상이 심해져 요양병원에 가게 되었고, 하나밖에 없던 약방(약국 아니라 약방) 주인이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유일한 약방이 사라졌단다. 코로나가 극성이라 가게로 놀러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장사가 잘 안 돼 소소한 수익은 더 줄어들었다고 엄마는 하소연 한다.  
#대중교통 #버스노선 #기차 #코로나 #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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