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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쏘아올린 '정치보복' 그림자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촛불시민 향해 "과거 같으면 사법처리"... 검찰공화국 우려 자초

등록 2022.02.09 20:08수정 2022.02.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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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함의 발로일까, 평소 소신의 피력일까.

폭주가 따로 없다. 최근 진통 끝에 오는 11일 두 번째 대선 후보 TV토론 참가를 확정 지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연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위 높은 강공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한데, 그 대상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등 경쟁자가 아닌 촛불 시민과 현 정부였다. 독하고 날선 발언을 통해 여전히 '칼잡이' 시절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조국 사태 때는 참 어이없는 일들이 있었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앞에 수만 명, 얼마나 되는 인원인지 모르겠는데 소위 말하는 민주당과 연계된 사람들을 다 모아서 검찰을 상대로 협박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어떤 정권도 이런 적 없었다. ...(중략)... 완전히 무법천지다. 과거 같으면 다 사법처리될 일인데 정권이 뒷배가 되어서 그런지 마음대로 한다. 그러니깐 모든 게 다 무너진 것이다."

지난 8일 당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에서 공개된 정권교체행동위와의 인터뷰 중 일부다(관련기사: 윤석열 "문 대통령, 아주 정직한 분이라 생각했는데..." http://omn.kr/1x9ep). 윤 후보는 2019년 가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및 조국 일가족 수사 당시 서초동을 뒤덮었던 촛불 시민들을 '사법처리 대상'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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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검찰청앞 시민들 분노 폭발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도로에서 사법적폐청산연대 주최로 열렸다. 2019.9.28 ⓒ 권우성

 
민주주의의 근간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서초동 및 여의도로 향했던 시민들은 '윤석열 검찰'의 전무후무한 조국 일가족 강압 수사를 비판하는 동시에 검찰개혁 및 공수처 설치 등을 주장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었다.

평소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듯한 발언을 해온 윤 후보의 이 같은 인식은 그 자체로 퇴행적이다. 윤 후보는 촛불 집회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가. 이 같은 윤 후보의 발언은 지난해 12월 전남 순천을 방문한 자리에서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두고 "어디 외국에서 수입해온 그런 이념에 사로잡혀서 민주화운동을 한 분들"이란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적 발언과도 맞닿아 있다.

문제는 윤 후보의 해당 발언이 여전히 검찰주의자의 편협한 인식 그 자체란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국민 여론은 검찰을 개혁과제 1순위로 꼽았다(2017년 5월 2주 차 리얼미터 조사). 본인이 검찰총장에 취임한 이후, 그 검찰개혁을 지지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을 '사법처리 대상'이라 몰아붙인 윤 후보. 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칼잡이' 윤 후보의 인식은 촛불시민을 넘어 현 정부로 향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부정에 정치보복 암시까지


"(적폐청산 수사) 할 거다. 그러나 대통령은 관여 안 한다. 현 정부 초기 때 수사 한 건 헌법 원칙에 따라서 한 거고, 다음 정부가 자기들 비리와 불법에 대해 수사하면 그건 보복인가. 다 시스템에 따라서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거다."

지난 7일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윤 후보가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건가"란 질문에 대해 내놓은 답이다. 앞서 지난 4일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도 윤 후보는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보복정치'의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건 죄지은 더불어민주당 사람들 생각일 뿐"이라며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청와대가 즉각 발끈하고 여권에선 "정치보복"이란 반발이 나왔다.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윤 후보의 주장은 그 자체론 별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 누구의 입에서 나왔느냐가 관건일 터.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징계 절차를 밟다 직을 사퇴하고 대선 판에 뛰어든 문재인 정부 전임 검찰총장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인지는 따져봐야 할 듯 싶다.

조국 일가족 수사뿐만이 아니다. 이후 '윤석열 검찰'은 이른바 청와대 하명 수사 등을 통해 청와대 및 여권 인사들을 겨냥했지만 별다른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또 윤 후보는 현 정부가 검찰 인사권을 전횡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검찰총장 취임 직후 본인 측근들을 포함해 특수통 검사들을 요직에 배치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윤 총장이 근래 들어 그 어떤 검찰총장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검찰권을 휘둘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법원은 법무부의 윤석열 후보 징계가 "정직 2개월 징계도 가벼웠다"라며 '면직도 가능한 수준'이라 판단했다. 지난해 10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윤 전 총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판사 사찰 의혹', '채널A 사건 감찰 방해 및 수사 방해' 등 3가지 사유가 정당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

요컨대, 윤 후보의 차기 정권 적폐수사 천명은 본인 직무마저 충실하지 못했던 전임 검찰총장이 대선 후보로 나선 뒤 현 정권 수사를 공개선언 한 셈이라 할 수 있다. 윤 후보가 총장 시절 "쿨했다"라고 평가했던 MB 정부조차 집권 전에 대놓고 하지 못한 '복수의 수사학'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이 털면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검찰주의자의 비뚤어진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은 물론이다.

지금 윤석열 후보에게 우선인 것

윤 후보 지지자들 다수가 지지 이유로 '정권교체'를 꼽는 중이다. 민생 경제나 후보의 유능함, 정책 등과 비교해 압도적인 비율이라 할 수 있다. 윤 후보의 적폐 수사 운운은 이러한 지지층에 대한 적극적인 어필로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 후보도 9일 청와대를 향해 "문제 없으면 불쾌할 일 없을 것"이라며 논란을 피해 가지 않았다. 

아무리 윤 후보가 지지자들의 정권교체 열망을 등에 업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임기 말까지 지지율 40%대 안팎을 유지 중인 현직 대통령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득일까 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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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오른쪽)가 9일 오전 서울 중구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를 예방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소위 '본부장' 의혹과 관련해 일관되게 부인만 해온 윤 후보가 과연 현 정권의 적폐수사 운운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들 중 일부는 윤석열 정권 집권 이후 '노무현 수사 시즌2', '논두렁 시계 시즌2'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는다. 

이미 윤석열 캠프에 검찰 및 법조 출신 인사들은 물론 MB 정부 출신 인사들도 다수 포진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윤 후보는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최측근으로 알려진 한동훈 검사로 추정되는 A 검사를 들먹이며 "A 검사가 왜 서울중앙지검장이 되면 안 되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윤 후보 스스로 '검찰정치', '측근정치'의 가능성을 자인한 셈이라 할 수 있다. 

윤 후보는 부인하지만, 윤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을 경우 검찰공화국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윤 후보 집권 시 이전 권위주의 정부가 국정원을 앞세웠던 것처럼 검찰 수사가 만연하고, 문재인 정부 들어 뉴스를 장악했던 검찰이 정국을 주도하는 상황이 재림할 것이란 우려를 윤 후보 본인이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명약관화하다. 촛불시민들을 사법처리 대상으로 규정하고, 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을 암시하는 발언을 이어가는 윤 후보의 주장이 일말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법 말이다. 연일 터져 나오는 본인 관련 의혹 및 아내 김건희씨와 장모 최은순씨 관련 의혹을 털어내는 게 우선 아니겠는가. 남의 눈에 티끌보다 제 눈의 들보를 먼저 들여다보라고 했다.

더 나아가, 윤 후보가 검찰 인사 및 수사 전반에 일말의 개입도 하지 않을 거란 국민과의 약속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 및 권위주의 정권에서 검찰이 정권 안위를 위해 칼날을 휘둘렀던 역사적 퇴행을 바라는 국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라고 든 탄핵 촛불, 검찰개혁 촛불이 아니지 않은가.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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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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