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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살인' 이상의 절대권력이 작용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 17] 사법부가 유신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등록 2022.02.16 15:35수정 2022.02.1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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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당한 인혁당재건위사건으로 희생자들, 후에 무죄로 밝혀졌다.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당한 인혁당재건위사건으로 희생자들, 후에 무죄로 밝혀졌다.의문사위 자료사진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대학에서 유신철폐ㆍ구속자 석방ㆍ언론탄압 중지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더욱 거세게 일었다. 시위는 전국의 대학으로 확산되어 갔다. 4월 9일 박정권은 다시 한 번 야만성을 드러냈다. 인혁당 관계 인사 8명을 전격 처형했다. 사제단이 우려했던 참사가 현실화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일방적인 국민투표 실시 결과 73.1%의 찬성율을 압도적인 '국민의 뜻'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사제단을 비롯 종교계는 물론 많은 국민이 '설마' 하며 우려했던 일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자행했다. 9일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으로 집행한 것이다. 사제단은 즉각 이 같은 만행을 규탄하는 〈인혁당 피고인들의 사형집행을 보고〉란 성명을 냈다. 
 
<사법살인> 인혁당 사형집행 소식에 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1975. 4. 9) 제2차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공작으로 조작된 공안사건이다. 민주화운동가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대법원에서 사형언도를 내린 지 18시간 만에 전원 처형하였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는 1975년 4월 9일!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 항의했고 국제앰네스티도 4월 10일에 박정희 정권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박정희 정권의 잔혹함과 야만성을 드러낸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사법살인> 인혁당 사형집행 소식에 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1975. 4. 9)제2차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공작으로 조작된 공안사건이다. 민주화운동가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대법원에서 사형언도를 내린 지 18시간 만에 전원 처형하였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는 1975년 4월 9일!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 항의했고 국제앰네스티도 4월 10일에 박정희 정권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박정희 정권의 잔혹함과 야만성을 드러낸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경향신문사
 

사제단이 인혁당 사건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사연을 들어보자.(함세웅 신부 증언)

저희들은 전국 각지에서 거의 한 주일에 한두 번 돌아가면서 미사를 봉헌하려고 노력했다. 시국에 대해 반성도 하고 비판도 가했다. 그래서 우선 민청학련 관련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억울한 내용, 재판 과정에서 들으신 것들, 조사 과정에서 고문당한 내용, 사건 발표 내용 자체가 사실과 너무나 다른 점들을 호소하시면서 우리가 많이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한 달 정도 지나갔을 때, 다른 가족들이 찾아오셨다. 그분들은 이른바 인혁당 관계 가족들이셨는데, 저희들도 이름 자체가 조금 그러니까 상당히 조심스럽게 만나봤다. '인민혁명'이라고 해서 그중 한 어머니 말씀이 이랬다.

"신부님, 우리 남편은 군복무를 했고 육군 대위로 제대했고, 또 우리나라를 위해 북한과 대치된 상황에서 국방의무를 다한 군인이었는데, 지금은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만약 내 남편의 사상이 의심이 간다든지 북한과 연계되어 있다면 저 자신도 이의를 달지 않겠다. 그러나 꼭 조건이 있다. 꼭 공개재판을 통해 밝혀졌으면 한다."

미사 전에 그분들을 만나 뵈었더니 그분들의 호소가 너무 절실하고도 간곡할 뿐 아니라 진실에 기초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공개재판을 통해서 사형이 집행된다면 이의를 달지 않겠다고 자신있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을 때 우리가 들어줘야겠다. 1차적으로 유신체제였지만 정부당국과 중앙정보부에 대해 요구했던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개재판은 필수적 과정이니까 공개재판의 절차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주석 2)  
 인혁당재건위사건 재판 모습
인혁당재건위사건 재판 모습의문사위 자료사진
 
다음은 가족들이 정부에 선처를 호소하던 때 송철환(사형선고를 받은 송상진의 아들)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박 대통령 각하께 눈물로 호소합니다.


각하, 저는 이번 민청학련(인혁당) 사건으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은 송상진의 아들입니다. 저는 미미한 지식으로나마 민주주의가 무엇이며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습니다.(……)건전한 민주주의 교육을 해준 아버지께서 인혁당 당원으로 공산주의자라니 전혀 믿어지지 않습니다. 저희 형이 경북고에 입학하여 입학금 때문에 걱정하던 중 아버지께서 친구 분에게 돈 꾼 것을 공작금이라고 하다니 억울할 뿐입니다. 저는 다만 법치국가로서 법정증거주의로서 어쩌면 이렇게 억울한 재판을 하였는가 하여 슬프고 억울한 마음밖에 들지 않습니다. (주석 3)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회는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고, 런던에 본부가 있는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도 사형집행 다음날 "사형수 8명에게 공공연히 씌워진 증거가 의심스러운 것으로 판단한다"는 항의서한을 보냈다.


흔히 인혁당 사건을 두고 '사법살인' 이라 하여 사법부의 죄에 무게가 실린다. 사법부가 유신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최종 선고가 나기도 전에 사형이 확정되고 초법적인 신속한 집행에는 최고 권력자의 힘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2005년에 공개된 인민혁명당 사건 희생자의 사형집행 관련 문서에 따르면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장과 서울구치소로 발송된 형선고통지서는 1975년 4월 8일 오전 10시에 있었던 대법원 선고보다 7시간 앞선 이날 오전 3시에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에 접수됐다는 소인이 찍혀 있었다. 
 
1965년 인혁당 사건 정보기관에 의해 조작된 1965년 인혁당 사건 재판 모습.
1965년 인혁당 사건정보기관에 의해 조작된 1965년 인혁당 사건 재판 모습.이영천(역사관 촬영)
 

사법기관의 최종선고가 나기도 전에 이미 이들에게 사형이 확정돼 있었던 셈이다. 보여주기식 절차에 불과했던 재판 과정과 판사들이 판결을 내리기도 전에 선고통지서가 비상고등군법회의에 접수되었단 사실, 사형 준비는 물론 집행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진 정황들을 봤을 때, 이미 권력 최상층부의 사전 지시에 따라 이들의 판결이 정해져 있었으며, 이 사건이 계획된 사법살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석 4)


주석
2> 이건혜, <박정희는 왜 그들을 죽였을까>, 110~111쪽, 책보세, 1913.
3> 앞의 책, 123쪽.
4> 앞의 책, 142~144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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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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