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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저널리즘'의 막장

[取중眞담] "가문 대표해 사과합니다"라는 진중권은 누가 키웠나

등록 2022.02.15 18:12수정 2022.02.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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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가 지난해 5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지 전문가모임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공정과상식, 상임대표 정용상) 창립토론회에서 기조발제하고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가 지난해 5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지 전문가모임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공정과상식, 상임대표 정용상) 창립토론회에서 기조발제하고 있다.권우성
 
'진중권'은 우리 언론이 사랑하는 이름이다. 특히 보수언론은 진중권씨의 페이스북을 출입처로 삼았다. 매우 정파적인 그의 주장은 객관·중립적인 것으로 포장되어 힘을 얻었다. 과거 진보 진영의 '입'으로 활동한 사람이, '조국 사태' 이후 현 정권과 진보 진영 전반을 비난하고 있다는 서사 덕분이었다. 

보수언론과 진씨는 일종의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언론은 진씨의 페이스북 글을 이용해서 쉽게 기사를 쓰면서 조회수를 확보하고, 진씨는 주목을 받으며 '정치 평론가'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식이다. 그렇게 온라인 지면이 '진중권'이라는 이름으로 가득찬다.

당연히 이와 같은 보도행태에선 큰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진씨의 일방적 주장이 언론에 의해 여과없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해 11월 19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는 제20차위원회 조치내역에서 진중권씨의 SNS를 인용해 보도한 6건에 대해 주의 혹은 공정보도 협조요청을 줬다.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표현을 여과 없이 기사화는 것은 유권자를 오도하거나 특정 후보자에게 유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해당보도 6건은 모두 진중권씨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두고 "실성했나" 혹은 "대장동 몰랐으면 박근혜, 알았으면 이명박" 등 일방적 비난을 한 내용이었다.  

공인이 아닌 평론가의 말이라도 기사화될 수는 있다. 온라인 상에서 크게 화제가 됐거나, 혹은 새로운 정보나 통찰있는 주장을 담고 있을 때다. 그러나 지적받은 보도들은 그저 진씨가 정치인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는 걸 전하는 것 이상의 값어치가 없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발언들을 주목한다. 자극적이고 이목을 끌기 때문이다. 당시 이재명 후보를 비판한 진씨의 페이스북 글(2021.10.16) 내용은 "이분이 실성을 하셨나. 그냥 나오는대로 질러대네요. 물귀신 작전도 개연성이 좀 있어야지. 원숭이 엉덩이에서 백두산으로 비약하네(...)" 등이다. 

진씨는 언론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미디어문화 연구자인 김내훈씨가 출간한 책 <프로보커터>는 진씨와 언론의 공생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언론사 입장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는 그의 발언은 그 자체로 훌륭한 기삿감이다. 그의 도발과 주파수가 맞는 정파성을 가진 유력 매체라면 그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인용한다. 유명인의 수위 높은 발언이 타이틀로 붙여진 기사를 그냥 지나칠 사람은 드물고, 그런 발언을 줄기차게 노출함으로써 일정하게 여론을 비트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력 매체가 인준한 그의 스피커는 볼륨을 키운다. 미디어는 커진 볼륨에 다시금 권위를 부여하며 그를 1면에, 헤드라인에, 커버스토리에 띄운다. 상호 증폭의 공생관계가 만들어진다.

실제 기자협회보가 2019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빅데이터분석 업체 '스피치로그'에 의뢰해 2년 반 동안 10개 종합일간지와 9개 방송사의 기사를 수집·분석한 바에 따르면, 진씨는 '언론에 가장 많이 인용된 인물' 24위(3712건)였다. 1~23위는 모두 언론에 수시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국내·외 정치인이었다. 진씨의 언론 인용 빈도가 얼마나 잦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중앙일보(751건), 세계일보 (731건), 조선일보 (724건), 국민일보·서울신문(451건) 등 보수언론들이 진씨 발언을 많이 인용했다.

진중권 없는 진중권 저널리즘
 
 진회숙 음악평론가의 글을 인용해서 보도한 언론들. 다수의 언론은 그를 '진중권 누나'로 소개했다.
진회숙 음악평론가의 글을 인용해서 보도한 언론들. 다수의 언론은 그를 '진중권 누나'로 소개했다.네이버뉴스 캡처

하루가 멀다하고 진씨의 발언이 여과 없이 보도되는 일이 반복된다. 오죽하면 이를 비판하는 '진중권 저널리즘'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정보값'도, 그렇다고 정치사안에 대한 특별한 전문성도 없는 그의 '거친 발언'이 보도되지 않기 위해선 진씨가 말과 글을 멈추거나, 언론이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진씨가 잦은 신고를 받아 페이스북 계정이 정지되면서 말을 멈췄음에도, 언론이 진씨에 대해 보도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진회숙 음악평론가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구둣발' 논란에 대해 평가한 글이 언론에 의해 보도된 것이다. 진 평론가는 진씨의 누나다.

<"헐!합성인줄"...진중권 누나 진회숙, 윤 쭉뻗 사진에 보인 반응>(조선일보), <'윤 구둣발' 사진 본 진중권 누나 "이게 제일 충격적. 정상적인 사고 가진 사람인가">(세계일보), <'윤 구둣발'에 놀란 진중권 누나 "헐, 합성 아니라고?">(국민일보), <진중권 누나 "합성이 아니라고? 윤석열 구둣발 사진 충격">(MBN) 등이다. '윤석열 구둣발'에 대한 진회숙 평론가의 페이스북 글이 언론에 의해 보도될 이유는 단 하나다. 그가 진씨의 누나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언론은 진 평론가의 글을 소개하면서 그의 이름 대신 '진중권 누나'로 제목을 잡았다. 진씨 누나의 발언이며, 그가 이번 대선에서 상대적으로 윤석열 후보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진씨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에 언론은 집중했다. 진중권 없는 '진중권 저널리즘'이었다.

언론이 깔아놓은 판에 진씨가 동참했다. 14일 강양구 TBS 기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진씨의 입장문을 대신 전달했다. 진씨는 진 평론가의 "선진국이면 이 사진 하나로 끝나는 거 아닌가?" 등의 발언을 비판하며 "음악평론가 진회숙씨는 선진국에 살아본 적이 없다. 독일에서는 장관이 법인카드로 머리를 했다가 잘린 일이 있고, 스웨덴의 총리 지명자는 법인카드로 초컬릿을 샀다고 잘린 일이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되레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언급한 것이다.

이어 "가벼운 실수를 가지고 의미를 한껏 부풀려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삼아 난리를 치는 것은 북한과 같은 후진국 사회에서 보는 현상"이라며 "한 번도 선진국에 살아본 경험이 없는 가족 일원의 몰상식한 발언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에 대해 진씨 가문을 대표해 사과드린다"라고 밝혔다. 윤 후보의 '구둣발'은 가벼운 실수로, 진 평론가의 발언은 '몰상식'이라고 지적한 셈이다.

진씨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언론이 진씨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호명하는 와중에, 또다시 진씨가 나섰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애꿎은 진 평론가만 구설에 올랐다.

진중권과 보수언론, 이제 공생 넘어 공멸 단계
 
 진중권씨는 자신의 누나인 진회숙 음악평론가의 글에 대해 "대신 사과드린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진중권씨는 자신의 누나인 진회숙 음악평론가의 글에 대해 "대신 사과드린다"라는 입장을 밝혔다.강양구 기자 페이스북
 
김언경 뭉클미디어 인권연구소 소장은 "어떤 사안에 대해 SNS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혔는데, 진중권 누나라는 이유로 그것이 기사화된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한 형태"라며 "어딘가에 글을 썼다는 이유로 좌표가 찍히고 나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개인에게는 '공포'에 가깝다"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언론이 진씨의 비아냥과 강한 어조의 말을 받아쓰는 분위기가 도를 넘고 있다"라며 "심지어 진중권 누나가 한 말조차 '따옴표' 쳐져서 보도되는 것은 따옴표 저널리즘의 최후가 아닐까 싶다"라고 밝혔다.

이어 "진씨가 언론의 주목을 이용하고 필요로 한다고 하더라도, 언론은 스스로 한 사람의 입에 좌우되는 기사를 지양해야 한다. 만약 진회숙 평론가의 말을 보도할 경우, 선진국에서는 실제 이런 사례가 어떤 평가를 받는지 취재를 해서 보도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이번 사건은 언론이 판을 깐 상황에서, 진 평론가만 큰 피해를 본 경우다"라고 밝혔다.

한편 진 평론가는 진씨의 입장 표명에 대해 14일 반박글을 올렸다. 이중에는 진씨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진씨의 누나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글을 퍼다나른 언론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그는 "취재는 안 하고 남의 페북글을 짜깁기해서 기사를 쓰는 기자들에게 화가 났지만 더 이상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일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참았다"라고 말했다. 진 평론가는 진씨가 비판해야 될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언론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가 비판해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니라 그것을 퍼나르며 자기 진영 유리한 대로 이용하는 사람들과 언론입니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자유로운 한 인간이고, 제 페북에 저의 생각을 쓸 자유가 있으니까요.
#진중권 #중앙일보 #조선일보 #따옴표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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