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전 동양대교수가 지난해 5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지 전문가모임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공정과상식, 상임대표 정용상) 창립토론회에서 기조발제하고 있다.
권우성
'진중권'은 우리 언론이 사랑하는 이름이다. 특히 보수언론은 진중권씨의 페이스북을 출입처로 삼았다. 매우 정파적인 그의 주장은 객관·중립적인 것으로 포장되어 힘을 얻었다. 과거 진보 진영의 '입'으로 활동한 사람이, '조국 사태' 이후 현 정권과 진보 진영 전반을 비난하고 있다는 서사 덕분이었다.
보수언론과 진씨는 일종의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언론은 진씨의 페이스북 글을 이용해서 쉽게 기사를 쓰면서 조회수를 확보하고, 진씨는 주목을 받으며 '정치 평론가'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식이다. 그렇게 온라인 지면이 '진중권'이라는 이름으로 가득찬다.
당연히 이와 같은 보도행태에선 큰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진씨의 일방적 주장이 언론에 의해 여과없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해 11월 19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는 제20차위원회 조치내역에서 진중권씨의 SNS를 인용해 보도한 6건에 대해 주의 혹은 공정보도 협조요청을 줬다.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표현을 여과 없이 기사화는 것은 유권자를 오도하거나 특정 후보자에게 유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해당보도 6건은 모두 진중권씨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두고 "실성했나" 혹은 "대장동 몰랐으면 박근혜, 알았으면 이명박" 등 일방적 비난을 한 내용이었다.
공인이 아닌 평론가의 말이라도 기사화될 수는 있다. 온라인 상에서 크게 화제가 됐거나, 혹은 새로운 정보나 통찰있는 주장을 담고 있을 때다. 그러나 지적받은 보도들은 그저 진씨가 정치인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는 걸 전하는 것 이상의 값어치가 없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발언들을 주목한다. 자극적이고 이목을 끌기 때문이다. 당시 이재명 후보를 비판한 진씨의 페이스북 글(2021.10.16) 내용은 "이분이 실성을 하셨나. 그냥 나오는대로 질러대네요. 물귀신 작전도 개연성이 좀 있어야지. 원숭이 엉덩이에서 백두산으로 비약하네(...)" 등이다.
진씨는 언론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미디어문화 연구자인 김내훈씨가 출간한 책 <프로보커터>는 진씨와 언론의 공생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언론사 입장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는 그의 발언은 그 자체로 훌륭한 기삿감이다. 그의 도발과 주파수가 맞는 정파성을 가진 유력 매체라면 그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인용한다. 유명인의 수위 높은 발언이 타이틀로 붙여진 기사를 그냥 지나칠 사람은 드물고, 그런 발언을 줄기차게 노출함으로써 일정하게 여론을 비트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력 매체가 인준한 그의 스피커는 볼륨을 키운다. 미디어는 커진 볼륨에 다시금 권위를 부여하며 그를 1면에, 헤드라인에, 커버스토리에 띄운다. 상호 증폭의 공생관계가 만들어진다.
실제 기자협회보가 2019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빅데이터분석 업체 '스피치로그'에 의뢰해 2년 반 동안 10개 종합일간지와 9개 방송사의 기사를 수집·분석한 바에 따르면, 진씨는 '언론에 가장 많이 인용된 인물' 24위(3712건)였다. 1~23위는 모두 언론에 수시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국내·외 정치인이었다. 진씨의 언론 인용 빈도가 얼마나 잦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중앙일보(751건), 세계일보 (731건), 조선일보 (724건), 국민일보·서울신문(451건) 등 보수언론들이 진씨 발언을 많이 인용했다.
진중권 없는 진중권 저널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