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정규직 채용' 말 바꾼 회사 혼내주는 법

[노동의 종말] 구직자 보호가 필요한 이유

등록 2022.03.02 06:09수정 2022.03.02 06:09
1
원고료로 응원
노동의 가치가 퇴색하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마주했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며 현장의 관찰자이자 조율자로서 신입 노무사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독자와 공유합니다.[기자말]
구직자 A씨는 얼마 전 한 기업의 채용 면접 자리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분명 그가 인터넷 구인 공고에서 확인했던 기본급은 월 300만 원이었는데, 막상 면접 자리에서 인사팀장이 "수습 기간에는 최저임금을 지급하고, 이후 1년 차의 남은 기간에는 '일종의 교육 기간'이므로 월 250만 원만 지급하겠다"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었다.

A씨는 수습 기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만 2년 이상 경력자를 채용하면서 교육 기간을 별도로 두고 급여를 깎겠다는 기업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A씨는 다른 기업에도 응시하였으나 일정이 겹쳐 그중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이 기업을 선택한 상황이었기에, 결과적으로 다른 기회조차 날리면서 처음부터 다시 구직을 시작할 판이 되었다.

상기한 예시의 내용은 다소 극단적이더라도 구직 공고와 실제 근로 조건이 전혀 다른 이와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주변에서 찾을 수 있다. 구직 공고에서는 '주 5일, 09:00~18:00'이라고 적어두고 실제로는 주말을 포함한 스케줄 근무를 지시한다거나, '정규직(기간의 정함 없음) 채용'으로 명시해 놓고 최초 1년간은 기간제 근로계약을 관행적으로 체결한다는 등 양상은 다양하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한 클래식 음악 유튜브 사업자가 경력 PD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최초 채용 절차에서는 구두로 4천만 원의 연봉에 근로계약에 합의하였다가 첫 출근을 20시간 남기고 일방적으로 500만 원을 삭감하겠다고 통보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유튜브 사업자가 "아직 서면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전이므로 금액 삭감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여 많은 청년층 구독자들이 이탈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일이 있어도 노동관계법령을 통해 구제를 받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그 이유는 애초에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이 근로계약을 체결한 이후의 '근기법상 근로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근로계약 체결 전과 후

일단 채용되어 근로계약을 체결한 뒤에 실제 적용받는 임금 기타 근로 조건이 근로계약의 내용과 다르다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근기법 제19조에서는 명시된 근로조건이 사실과 다를 경우 근로조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며, 사용자에게는 귀향 여비를 지급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고 있다.


그러나 위 구직자 A씨와 같이 면접에서 구직 공고와 다른 조건을 제시받은 경우 근로계약이 체결되기 전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근로 조건이 다름을 이유로 근기법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 클래식 유튜브 사건에 근기법을 적용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근로계약은 체결했으나 서면으로 하지 않고 구두로 했기에 합의 내용인 임금액을 명확하게 입증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근로계약 체결 전이든 후이든 구직자가 미리 약속된 근로조건을 보장받지 못해 직·간접적인 피해가 발생한 것은 같다는 점에서 노동관계법령의 대표격인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다.
  
직업안정법상 거짓 구인광고 처벌


이러한 채용 단계에서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우리 법제는 별도의 법령을 제정하여 규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직업안정법 제34조에서는 근로자를 모집하는 자는 거짓 구인광고를 하거나 거짓 구인조건을 제시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면서, 그 범위 중 하나를 '구인자가 제시한 직종·고용형태·근로조건 등이 응모할 때의 그것과 현저히 다른 광고'로 정하고 있다.

위 제34조의 내용은 이 법에 따른 직업소개사업뿐만 아니라, 근로자를 모집하는 일반적인 사업체도 해당되는 만큼 채용 단계에서의 부정을 예방하기 위한 취지로 적용될 수 있다. 만일 거짓 구인광고로 판단될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벌칙 조항이 꽤나 엄격하다.

그런데 이 법은 사실상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2021년 1월부터 7월까지 고용노동부가 신고받은 거짓 구인광고 사례 134건 중 실제 고발로까지 이어진 경우는 1건에 불과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두고 벌칙이 엄격하다 보니 해석을 보수적으로 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저조한 실적은 이 법이 사실상 '구인을 가장한 판매업자 모집' 등 허위광고를 적발하는 목적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근로조건 등이 '현저히 다를 것'을 조건으로 두고 있어, 감독관이 판단할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도 이 법의 적용을 어렵게 하는 요소로 보인다.
  
 청년들이 취업게시판 앞에서 게시물을 살피고 있다. 2020.4.17
청년들이 취업게시판 앞에서 게시물을 살피고 있다. 2020.4.17연합뉴스
 
채용절차법상 거짓 채용광고 금지

그러다 보니 실무적으로는 이와 유사한 취지를 가지고 있는 채용절차법상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가 더 많다. 지난 2014년 제정되어 상시 30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적용되는 이 법에는, 거짓 채용 광고 등의 금지(제4조)뿐만 아니라 부정청탁 등 채용강요 금지(제4조의2), 개인정보 요구 금지(제4조의3) 등 구체적인 제한을 두고 있다.

채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루다 보니, 고용노동부 또한 이 법의 적용에 있어서는 비교적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하반기 채용절차법 사업장 지도점검 및 건설현장 채용 강요 등 신고 처리 결과 발표>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에만 위 '근로조건의 불리 변경'을 이유로 2개 사업장에 과태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기타 사유까지 합칠 경우, 과태료 부과 건수는 총 23건에 달한다.

근로조건이 현저하게 다를 것을 요건으로 하는 직업안정법에 비하여, 채용절차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근로조건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을 요건으로 하다 보니 법 위반 판단의 기준이 명확하다. 게다가 채용광고 내용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도 제한하고 있는 만큼, 실효성 차원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구직자에게 유리하다.

또한 단순히 근로조건이 불이익하게 변경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채용 당시 제출하도록 한 개인의 아이디어 등을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으며 채용일정이 변경되는 경우에도 이를 고지하는 의무를 두는 등, 전반적인 차원에서 구직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기능하고 있다.

다만 한계도 명확하다. 이 법은 현재 상시 근로자 수가 30인 이상인 사업장에만 적용되므로, 상당수의 중소 사업장에는 애초에 적용될 수가 없다. 게다가 거짓 채용광고에 대한 처벌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며, 단순히 근로조건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한 경우에는 벌칙조항 없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하도록 해 처벌 수준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구직자 보호의 중요성

4차 산업이네 자동화네 하며 실업 인구가 초점이 되는 요즘 구직 전선에 뛰어드는 이들 구직자를 보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코로나19라는 특수한 현상으로 경제 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구직자들을 신속하게 채용할수록 사회 전반의 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우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나 법제도 변경의 방향 자체가 단순히 구직자의 취업 여부 즉 실업률 감소라는 '양적 측면'에만 초점을 둘 뿐, 채용부터 계약 초기까지 이어지는 부정으로 낮은 질의 일자리가 양산된다는 '질적 측면'에는 소홀하다. 우리 사회가 현상의 외적 부분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계속되는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제 등으로 최소한의 노동인권이 확보된 상황에서 사업주에게 지나치게 많은 부담을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적어도 급여수준 등을 속여서 인력을 손쉽게 취하려는 반칙만큼은 엄격하게 금해야 한다. 이러한 금지 규정을 규율하고 있는 채용절차법이 전체 사업장에 적용되도록 그 범위를 넓히는 방법이 해답이 될 것이다.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계약 체결 이전의 구직자 보호를 위한 포괄적인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그 범위 또한 근기법상 근로자에 국한하지 말고, 산업안전보건법 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최소한의 절차적 공정성이 담보된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실업 문제의 해법을 논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노무사 #채용절차법 #직업안정법 #실업률 #구직자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現 조은노무법인 공인노무사, HR컨설턴트(위장도급/산업안전보건 등) // 前 YTN 보도국 영상취재1부 영상기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5. 5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