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산 게이 <헝거>
사이행성
날씬한 몸에 가치를 두고 비만을 '비난의 잣대'로 삼는 사회에서 록산 게이는 흑인, 성폭력 피해자, 초고도 비만이라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상처투성이 몸을 바라본다.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는 반향이 되어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수시로 겪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준다.
있지만 없는 사람처럼 취급되는 상황, 적절한 의자와 공간이 없어 공공장소에서 몸을 편안하게 둘 수 없는 여건, 남성들에게 듣는 혐오와 비하의 말과 사람들의 경멸적인 시선.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여성에게 악의적인 문화,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통제하려는 문화'를 예리하게 꼬집는다.
소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배운다. 날씬하고 아담해야 한다고. 자리를 많이 차지해선 안 된다고. 남자들 눈에 보기 좋아야 한다고. 사회에서 받아들일 만해져야 한다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알고 있다. 우리는 점차 작아지고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 32쪽, <헝거>, 록산 게이, 노지양 옮김, 사이행성
'날씬함을 자기 가치와 동일하게 놓으라'고 최면을 거는 사회, '체중 감량에 대한 욕망을 여성 정체성의 기본 요소라고 여기는 문화'에서 '비만인의 몸은 무절제와 타락과 나약함의 상징'이며 '행복이란 오직 날씬함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다루어진다고 록산 게이는 말한다.
사회는 지속적으로 여성에게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것에 대한 비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한다고. 그런 사회에서 여성은 끝없는 자기 부정과 불만족, 수치심에 시달린다. 여성의 '몸'은 하나의 골칫거리이자 문제로 타자화된다.
그것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몸에 관해 이 문화가 보내는 해로운 메시지'임을 분명히 하고 그 기준에 힘없이 굴복하지 말고 저항해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자신이 겪은 '폭력의 역사'를 드러내야 하는 이유를 그녀는 안다. 침묵 속에 삭제되고 지워진 진실은 말하기를 통해서만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처럼 각각의 고유한 몸이 겪는 고통과 폭력의 경험은 더 많이 말해지고 더 들어야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내 몸은 나의 선택
<헝거>를 읽고 내 몸에 대한 생각을 돌아보았다. 성장하면서는 조심하고 감춰져야 하는 것, 성장 후엔 끝없는 비교 속에 부끄러운 대상이었던 몸. 거기에는 사회적으로 주입된 시선과 내 몸을 온전히 통제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덧대어져 있다.
책장을 덮은 후,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분투한 록산 게이의 목소리와 함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하나 더 떠올랐다. 여성 스스로가 건강권과 재생산권을 온전히 소유하길 요구하는 "My body, My choice"라는 구호가 바로 그것이다.
나의 몸은 나의 선택. 자신의 몸에 관한 결정은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짧은 말. 이는 낙태죄 폐지를 위해 긴 시간 여성들이 외쳐 온 구호다. 여성이 건강할 권리,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와 낳을 권리까지 모두 포함한 '재생산권'을 요구하는 외침이다.
여성들이 과거부터 끈질기게 말해온 이 구호 덕분에, 2019년 한국에서도 낙태죄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이는 여성들이 스스로 말할 때 기울어진 세상의 각도가 드러나고, 더디더라도 평평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내 몸은 나의 선택", 그리고 "내 가치는 몸에 달려 있지 않다(336쪽)". 자신의 몸에 적대적인 사회에 맞서 목소리를 낸 모든 여성들, 그리고 록산 게이의 숭고하고 용감한 고백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내가 살아온 역사와 내 몸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자기혐오와 비하로 엉망인 당신에게, 여성에게 들이대는 잣대로 상처받은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읽고 이야기하며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 여성의 몸에 비합리적인 기준을 들이대는 사회에 저항하자고. 괜찮지 않다고, 차별에 침묵하지 않겠다고, 앞선 여성들의 외침에 목소리를 더하자.
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사이행성,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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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때문에 절망에 빠질 때, 이 말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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