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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때문에 절망에 빠질 때, 이 말 기억하겠습니다

[3.8 세계 여성의 날, 함께 읽고 싶은 책] 록산 게이의 '헝거'가 전해주는 용기와 위로

등록 2022.03.09 15:14수정 2022.03.0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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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편집자말]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를 기리기 위해 1977년 UN에서 국제 기념일로 공식 지정했다.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 노동자에게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인간으로 존엄할 권리, 즉 참정권을 의미했다. 

세상은 '빵과 장미'를 외치는 여성들에게 침묵을 요구했지만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역사의 긴 흐름 속에, 그리고 평범한 일상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그 덕분에 여성의 권리는 신장되어 왔다. 성별에 따른 임금의 격차, 여성의 역할에 한계를 긋는 시선, 젠더 권력 구조 속 제도화된 성폭력이 드러나게 된 것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나'의 몸으로 존엄하게 살기 위해 
 
 여성이 자기 몸에 너그럽기란 쉽지 않다.
여성이 자기 몸에 너그럽기란 쉽지 않다.unsplash
 
여성 혐오와 차별적 시선,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역할과 잣대, 변하지 않는 현실은 존재한다.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적 시선 또한 여기 해당될 것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완벽한 몸매를 아름다움의 정석이라는 듯 보여주는 매체에 둘러싸여 인생 최고의 성취란 체중 감량에 성공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아름다움의 기준과 동떨어진) 자기 몸에 너그럽기란 쉽지 않다.

몸은 의지로 만들거나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고 많은 여성들이 평생 다이어트를 생각한다. 아침을 거르며 간헐적 단식을 생활화 하고 있는 내게도 몸무게에 대한 걱정은 따라다닌다. 여성의 몸에 제약과 한계를 긋는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몸을 인정하고 존중받기 위해, 우리에겐 '장미'가 필요하다. 그런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보았으면 하는 목소리가 있다.

상처받은 몸으로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직시한 여성, 아이티계 미국인으로 퍼듀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나쁜 페미니스트'로 페미니즘의 열풍을 몰고 온 작가 록산 게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과 허기에 대한 고백을 <헝거>(노지양 옮김, 사이행성)에 썼다. 이 책에는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 사회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기까지, 그녀만의 삶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그녀는 열두 살에 집단 성폭행을 당했고 그 일은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는 먹는 걸 택했다. '더 단단하고 더 강하고 더 안전하다'고 느끼기 위해 자신을 살 찌웠다. 190센티미터에 261킬로그램. 그녀의 몸은 자신을 가두는 '우리(cage)'가 되었고 또 다른 폭력을 불러왔다.

스스로 자신을 가두었음을, 자신이 만든 몸이 감옥이 되었음을 그녀는 안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바닥부터 들여다보기로 한다. 몸에 새겨진 상처의 역사를 천천히 되짚으며 자신을 직시한다.


자신을 직시하고 몸에 가둔 진실을 말하기
 
 록산 게이 <헝거>
록산 게이 <헝거>사이행성

날씬한 몸에 가치를 두고 비만을 '비난의 잣대'로 삼는 사회에서 록산 게이는 흑인, 성폭력 피해자, 초고도 비만이라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상처투성이 몸을 바라본다.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는 반향이 되어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수시로 겪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준다.

있지만 없는 사람처럼 취급되는 상황, 적절한 의자와 공간이 없어 공공장소에서 몸을 편안하게 둘 수 없는 여건, 남성들에게 듣는 혐오와 비하의 말과 사람들의 경멸적인 시선.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여성에게 악의적인 문화,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통제하려는 문화'를 예리하게 꼬집는다.    
 
소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배운다. 날씬하고 아담해야 한다고. 자리를 많이 차지해선 안 된다고. 남자들 눈에 보기 좋아야 한다고. 사회에서 받아들일 만해져야 한다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알고 있다. 우리는 점차 작아지고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 32쪽, <헝거>, 록산 게이, 노지양 옮김, 사이행성

'날씬함을 자기 가치와 동일하게 놓으라'고 최면을 거는 사회, '체중 감량에 대한 욕망을 여성 정체성의 기본 요소라고 여기는 문화'에서 '비만인의 몸은 무절제와 타락과 나약함의 상징'이며 '행복이란 오직 날씬함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다루어진다고 록산 게이는 말한다.


사회는 지속적으로 여성에게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것에 대한 비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한다고. 그런 사회에서 여성은 끝없는 자기 부정과 불만족, 수치심에 시달린다. 여성의 '몸'은 하나의 골칫거리이자 문제로 타자화된다.

그것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몸에 관해 이 문화가 보내는 해로운 메시지'임을 분명히 하고 그 기준에 힘없이 굴복하지 말고 저항해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자신이 겪은 '폭력의 역사'를 드러내야 하는 이유를 그녀는 안다. 침묵 속에 삭제되고 지워진 진실은 말하기를 통해서만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처럼 각각의 고유한 몸이 겪는 고통과 폭력의 경험은 더 많이 말해지고 더 들어야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내 몸은 나의 선택

<헝거>를 읽고 내 몸에 대한 생각을 돌아보았다. 성장하면서는 조심하고 감춰져야 하는 것, 성장 후엔 끝없는 비교 속에 부끄러운 대상이었던 몸. 거기에는 사회적으로 주입된 시선과 내 몸을 온전히 통제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덧대어져 있다. 

책장을 덮은 후,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분투한 록산 게이의 목소리와 함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하나 더 떠올랐다. 여성 스스로가 건강권과 재생산권을 온전히 소유하길 요구하는 "My body, My choice"라는 구호가 바로 그것이다.

나의 몸은 나의 선택. 자신의 몸에 관한 결정은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짧은 말. 이는 낙태죄 폐지를 위해 긴 시간 여성들이 외쳐 온 구호다. 여성이 건강할 권리,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와 낳을 권리까지 모두 포함한 '재생산권'을 요구하는 외침이다. 

여성들이 과거부터 끈질기게 말해온 이 구호 덕분에, 2019년 한국에서도 낙태죄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이는 여성들이 스스로 말할 때 기울어진 세상의 각도가 드러나고, 더디더라도 평평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내 몸은 나의 선택", 그리고 "내 가치는 몸에 달려 있지 않다(336쪽)". 자신의 몸에 적대적인 사회에 맞서 목소리를 낸 모든 여성들, 그리고 록산 게이의 숭고하고 용감한 고백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내가 살아온 역사와 내 몸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자기혐오와 비하로 엉망인 당신에게, 여성에게 들이대는 잣대로 상처받은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읽고 이야기하며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 여성의 몸에 비합리적인 기준을 들이대는 사회에 저항하자고. 괜찮지 않다고, 차별에 침묵하지 않겠다고, 앞선 여성들의 외침에 목소리를 더하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사이행성, 2018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헝거 #여성의목소리 #여성이말해야한다 #여성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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