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을 때마다 노트북을 치우고 책을 한 옆으로 밀어 놔야 했다.
envato elements
가족들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각자 흩어지면 '일단 살림은 미뤄두고 글부터 써야지!' 하고 식탁에 앉아보지만, 밤새 거실 위에 가라앉은 반려견의 털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눈을 질끈 감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부스스 일어나 청소기를 돌린다.
그러고 나면 바닥에 얼룩이 보여 물걸레를 돌린다. 그러고 나면 주방 개수대에 쌓여 있는 아침 식사 설거지가 보인다. 그러고 나면 저녁 거리가 걱정돼 장을 보러 간다. 또 그러고 나면... (짐작하실테니 길게 덧붙이지 않겠다)
깨끗하게 정리정돈 된 집, 맛있고 따뜻한 집밥, 빳빳하게 다림질된 옷. 내 무의식 속 주부의 역할에 대한 주문이 끝없이 밀려왔다. 다 마른 빨래는 바로 걷어야지. 개킨 빨래는 왜 빨리 제자리에 넣지 않니. 참, 지난 계절 옷 정리는 다 한 거야? 거실 장 먼지 좀 봐!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인류학자 김현경의 지적대로 "마치 그렇게 끊임없이 청소하지 않으면 주부의 자격이 없어진다는 듯이, 그렇게 쉬지 않고 일을 한다는 조건으로만 집에 있을 권리가 생긴다는 듯" 말이다.
온종일 집안을 종종거리고 다니지만, 독립된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이 문득문득 서글퍼지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글쓰기는 늘 뒤로 밀렸다.
여성 작가 35인의 글 쓰는 공간을 모은 타니아 슐리의 책 <글 쓰는 여자의 공간>에서도 많은 여성 작가가 '자기만의 방'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 작가들은 어떻게든 집에서 글을 쓸 공간을 만들었다.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은 어린아이들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식기와 빵 조각이 어질러진 부엌 식탁에서 글을 썼고, 중국 작가 장지에는 화장실 변기 위에 널판때기를 올려놓고 앉아 600쪽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썼다.
나 역시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시간'이나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계속 생각했다. 그러다가 우연히도 내 책상이 생겼다! 남편이 직장을 옮기면서, 사택에서 사용하던 책상을 집에 가져온 것이다.
나는 시야가 가려지도록 거실 구석에 책상을 놓았다. 애들은 지나가면서 '엄마도 방이 있어야 하는데……'라고 하지만 나는 책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좋다. 나이 오십에 '나만의 책상'이 다시 생긴 기쁨을 가족들은 알까?
내 책을 쌓아두어도 되고 번거롭게 매번 노트북을 옮기지 않아도 된다. 책을 읽다가 펴놓고 다른 일을 하다 되돌아와도 내 자리는 그대로 있다. 다이어리가 가까이 있으니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 메모할 수 있다. 필기구, 테이프, 플래그 등 작은 문구류도 손닿는 자리에 있으니 편하다. 학생 시절 내 책상이 있었을 때는 당연했던 것이, 지금에서야 얼마나 큰 특권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내 책상이 생기고 달라진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