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대구 서구 내당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대통령선거 책자형 선거공보물 발송작업을 하고 있다. 2022.2.21
연합뉴스
뛰는 물가이야기 끝에 주제는 마침내 대통령선거 이야기로 이어졌다. 사랑방 아궁이 앞에 선거공보물이 봉투도 안 뜯긴 채 쌓였지만 대통령선거 이야기엔 너나없이 뛰어들었다. 모두들 자신있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들 한 길로 걸어온 선거동지들이니까.
이웃들은 이승만 당에서 출발해 박정희 당, 전두환 당으로 이어온 대통령 선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노태우 당으로, 김영삼 당으로, 이명박과 박근혜 당으로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이 대오를 이탈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다면 누구도 구원해줄 수 없을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존재 자체가 말소되어버릴 것이라 여겼을 거니까. 실수로 1번 찍을 걸 2번에 잘못 기표했다며 투표장에서 충성과 결백을 주장하며 울고불고하지 않던가.
해방공간에서 겪은 험한 일은 여기 산골 주민들의 선거유전자를 그렇게 바꿔버렸다. 우익에 저항하면 죽음이라는 등식을 어찌 거부할 수 있었겠나. 그 칼날의 세월에서 살아남으려면 오직 공개적인 지지와 공개적인 투표로 자신의 정치관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밖에 없었으리라.
"윤석열이 말하는 거 좀 보라고. 아직도 세상에 좌익이 활개를 친다며. 저쪽 놈들은 다 좌익이라 하더라고."
"그러니까 저쪽에서 윤석열 도둑놈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고 있지. 그게 말이 돼? 검사가 도둑질을 어찌 하냐고."
몇몇 이웃들이 한마디씩 뱉었다. 옛날처럼 목에 핏줄을 세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것은 일종의 버릇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우익들의 나라고, 좌익척결의 기치는 유효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변함이 없을 거였다.
이들 앞에서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케케묵은 색깔론이라고 항변한다는 것은 이들의 살아있는 생명을 부정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1번 2번 3번 4번 모두가 다 우익이라고 해도 이들의 선택이 달라질 일은 만무했다. 그런 뻔한 결론 앞에서 입씨름을 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삼십만 원씩 나온다는 농민수당 신청 하셨지요?"
나는 슬며시 화두를 돌렸다. 선거이야기가 무거웠던지 다들 주제전환을 기다린 듯했다.
"그래. 며칠 전에 이장이 신청하라 하더라고. 농민수당이 뭐야?"
"아무도 농사지으려고 하지 않는데 농사지어줘서 고맙다고 주는 거래요."
"거짓말. 세상에 그런 돈이 어디 있어."
"그렇다니까. 앞으로는 점점 더 많이 줄 걸? 어디는 육십만 원 주는 곳도 있대요."
"줄 거면 다 같이 줘야지 그게 왜 차이가 나?"
"그러게요. 그게 다 선거에서 결정된다니까. 농민 잘 챙겨줄만한 시장 군수 뽑으면 많이 받게 되는 거라고."
"이왕이면 대통령이 나서서 다 똑 같이 주라고 하면 좋겠네."
"대통령 잘 뽑으면 월급 받는 농민이 된다니까. 농촌 농사 농부가 대접받는 세상이 온다니까. 그러니까 선거공보물이라도 꼼꼼히 잘 읽어봐요. 제발 뜯지도 않은 채 불쏘시개로 쓰지 말고."
선거공보물 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