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을 찾아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겼다. 수구·보수가 민주·진보를 이긴 것이다. 수구·보수의 승리이지만, 이것은 문제적 승리다. 민주당의 지난 5년을 돌아보게 만드는 선거 결과인 동시에, 수구·보수의 한계 역시 돌아보게 만드는 선거 결과다.
민주당은 촛불혁명과 2020년 총선으로 표출된 국민의 뜻에 부응하지 못하고 국민의힘에 패배했다. 이로 인해 역사의 퇴행을 일정 정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한국 현대사에 적지 않은 부작용을 끼치게 됐다. 이 역시 커다란 문제점이지만, 이번 대선으로 나타난 수구·보수의 문제점 역시 심각하다. 그 심각함이 그들의 승리로 인해 덮어져서는 안 된다.
이승만 정권이 4·19혁명으로 와해되고 박정희 정권이 부마민중항쟁을 비롯한 반(反)유신항쟁과 10·26 사태로 몰락했듯이, 6월항쟁을 맞은 전두환 세력도 정치무대에서 퇴장됐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전두환의 민주정의당(민정당)은 민주자유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을 거쳐 국민의힘으로 간판을 바꿔 달며 지금까지도 수명을 유지하고 있다. 민정당의 후계 정당들이 6월항쟁 뒤에도 오래 유지되고 있는 것은, 전두환이 1988년 퇴임 이후의 30년간 참회 없이 뻔뻔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를 설명한다.
6월항쟁 직후인 1987년 12월 대선에서 보수 후보를 내세웠던 민정당 정권은 그 후 거세게 일어난 노동·통일 운동의 열기를 변칙적인 방법으로 비껴나갔다. 6월항쟁에 뒤이은 민중혁명의 발생 가능성을 우려했던 그들은 민주진영의 김영삼 후보를 끌어들이고 그를 항쟁 5년 뒤의 대선에 내세웠다. 자기 내부에서 위기 극복을 감당할 지도자를 찾아내지 못하고 상대 진영 인물을 빼가는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했던 것이다.
영입
근 30년 만인 2016년 연말에 촛불혁명을 당한 민정당의 후예들은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위기를 피해 나갔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의 김영삼만큼의 위상은 갖추지 못했지만, 상대 진영에서 검찰총장을 했을 뿐 아니라 촛불의 응원을 받았던 인물을 영입해 상대 진영을 눌렀다.
양상은 다소 다르지만, 일본제국주의 몰락이라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경험했던 해방 직후의 친일 보수세력도 어느 정도는 그런 방식을 동원했다. 그들은 상대 세력인 독립운동 진영의 이승만을 자파 지도자로 영입해 권력을 연장했다.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 같은 지도자급 인물이 친일보수 진영에 있었지만, 그들은 '대의'를 위해 대통령 자리를 상대 진영 출신에게 양보했다.
변칙적인 위기 모면 방식은 수구·보수의 생존력이나 실용주의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그들의 정치적 한계를 노출한다. 국민 앞에 내세울 지도자를 자신들의 '적장자' 내에서 발굴하기 힘든 그들의 인력난을 반영한다.
수구·보수는 상대 진영에 비해 인재풀이 넓다는 점을 자부하지만, 정작 위기 시에 국민 앞에 내세울 후보는 자체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안정기일 때 당선된 이명박·박근혜를 제외한 역대 수구·보수 출신 대통령들은 상대 진영에서 영입됐거나 아니면 쿠데타로 일어선 인물들이었다.
위기는 본질을 드러낸다. 위기 시에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개인과 집단의 그릇 크기를 드러낸다. 수구·보수는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보다는 위와 같은 '실용주의'를 거리낌 없이 구사하곤 했다. 그들의 그릇 크기를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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