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침공 개시 후 남부 마리우폴서 이동하는 우크라군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2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군용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2022.2.24
연합뉴스/AP
21세기 들어 러시아와 나토는 다시 한번 소련과 나토가 겪었던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여준다. 2004년, 나토는 안보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반대에도 에스토니아를 비롯해 7개의 과거 소련의 위성 국가들의 나토 가입을 승인한다. 그러자 러시아는 나토의 확장에 대해 필요한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선포하게 된다 [4].
미 부시 정부가 이란의 핵위협으로부터 유럽을 지키겠다는 부실한 명목으로 폴란드와 체코에 전략적 핵무기 도입을 추진하자, 러시아는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있는 러시아의 영토 칼리닌그라드에 미사일 배치를 계획하고 실행해 옮긴다 [5].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에도 칼리닌그라드에 점진적으로 군비를 증강하자 나토는 4천 명의 병력과 지원군 4만 명을 폴란드와 발트해 연안 국가들에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푸틴은 이에 대해 핵전쟁을 가정한 훈련과 핵무기급 플루토니움 폐기(Plutonium Cleanup) 프로그램에서 탈퇴함으로써 반격한다 [6].
이후로도 푸틴은 지속적으로 '미국은 분리주의자들을 무장시켜 러시아 앞마당까지 보내고 있다'며 '러시아는 이 상황을 절대로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로 엄포했다. 푸틴 정부에게 우크라이나는 나토 확장을 억제할 마지막 보루인 셈이었다.
2014년 '러시아 군사독트린'을 보면 나토 확장은 러시아 지도층에게 가장 위협적인 요소로 언급된다. 왜냐하면 나토의 동진(東進)은 결과적으로 러시아 국경 근처에 나토의 군사기지가 들어선다는 의미이고 이는 러시아에게 정치적, 군사적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권과 영토 보존이 본인들의 기득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러시아 권력층에게 나토의 영향력 확대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7]. 푸틴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에 대해 민감하게, 우리 시각에선 비이성적으로, 대응해 왔던 이유인 동시에 러시아 정부가 나토의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어떤 군사적 행동까지 불사할지 예측해 볼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다.
한반도에 주는 교훈
러시아의 행보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이웃나라인 북한이 떠오르지는 않았는가. 몇몇 독자들에게는 북한을 이웃나라라고 부르는 것조차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분단체제 속에서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북한과 대한민국 사이에 작동됐던 안보 딜레마를 직시하고 결사적으로 빠져나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린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대응을 두고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그동안 나토가 러시아의 도발과 위협에 대해 안일하게 대응해 왔다는 지적과 함께 유럽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군비 증강과 군사적 대응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나토 확장에 대한 집착이 현재 유럽이 떠안게 된 안보 위기의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승인될 확률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8] 러시아의 안보 보장 요구에 대해 그토록 단호하게 거부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며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만약 나토가 전자를 선택한다면 다른 것은 차치하고 더 많은 전쟁 피해자, 희생자들을 낳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한반도는 우크라이나 못지않게 강대국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역이다. 상위층에는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의 안보 딜레마가 형성되어있고 하위층에는 남과 북의 안보 딜레마가 해소되지 못한 채 가중되고 있다. 평화 공존을 외치던 문재인 정부도 북한을 타깃으로 하는 '사상 최대 군비 증강'에 나서며 결과적으로는 안보 딜레마를 증폭시키게 됐다 [9].
부디 새로운 대한민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교훈 삼아 안보 딜레마가 초래할 전쟁의 먹구름이 대한민국을 뒤덮지 않도록 한반도의 군비 경쟁을 지양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세워나가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