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의 칼랑코에.
김현자
사실은, 안쓰러운 마음에 집어 들긴 했지만 잠시 망설였다. 뿌리는 물론 줄기까지 썩어들어가고 있어 과연 살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안 봤으면 모를까. 두고 오는 것도 마음 편하지 못해 내려놓지 못하고 주워오고 말았다. 하지만 집에 와서도 후회했다.
차로 10분쯤에 양주화훼단지가 있다. 올해로 8년째 남편과 텃밭에 쓸 퇴비나 모종, 씨앗 등을 사러 자주 가곤 한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그곳에 갈 때마다 규칙으로 정해놓은 것처럼 식물을 파는 상가로 들어가 구경하는 것으로 그날 볼일을 끝내곤 했다.
구경 끝에 하나씩 사 오다 보니 몇 년 사이 키우는 식물이 많아졌다. 사 들고 오는 만큼 죽이는 것들도 많아져 후회와 가벼운 자책감도 잦아졌다. 특히 월동을 위해 집안으로 들여놓는 가을이면 어디에 둘 것인지 고민하며 '더 늘려선 안 돼'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 다시 사 들고 오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 그 카랑코에를 주워올 무렵, 그해 봄 남편이 원해서 사 온 칼랑코에도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처럼 죽이고 말지도 모른다, 잘 키워보고 싶어 사들인 것도 걸핏하면 죽이면서 어쩌겠다는 건지? 잠시 고민했었다.
사실 칼랑코에를 주워올 때만 해도 다육식물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장마 중인데도 마당에 놓은 화분에 심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살려준답시고 더 많은 물속으로 밀어 넣는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카랑코에는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 가을쯤엔 제법 볼만해졌다. 그에 대견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애정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어떤 식물보다 자주 들여다보며 기분 좋아짐을 느낀다. '반려식물'이란 용어가 어색하지 않은 애정하는 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