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다가 너무 예뻐서 찍은 유채꽃밭
김지은
주변 사람들의 말은 훌훌 털어버렸는데 정작 내 마음속에서 두려운 마음이 올라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설레기보다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길치인 내가 혼자 잘 다닐 수 있을까. 난 운전도 못 하는데. 서울에서도 가끔 버스를 잘못 타는데. 이러다 숙소에만 처박혀 있는 건 아닐까. 설마 태풍이 불어 결항 되는 건 아니겠지.
가족과 함께 여행 갈 땐 해 본 적 없는 걱정들이다. 결혼 전에는 가끔 혼자 여행도 갔었는데, 어쩌다 이런 겁쟁이가 됐을까. 가고 싶은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한다. 아이에게 "엄마 여행 가지 말까?" 하고 물으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왜? 다녀와. 다녀와. 난 걱정 말고. 2박 3일 말고 한 일주일 정도 있다가 와."
난 아이가 학원에서 늦게 오는 목요일을 가장 좋아하고 아이는 내가 여행가는 날을 기다린다. 같이 있어도 좋지만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도 좋은 관계. 그래, 가자.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캐리어가 아닌 배낭에 짐을 싼다. 짐은 최소한으로 아주 단출하게 챙긴다. '큰 욕심 없이 숙소 근처의 오름 몇 군데만 다니자. 카페에서 글을 쓰자' 하는, 짐만큼이나 단출한 계획을 세운다. 이번 여행은 떠남 자체에 의의가 있다. 그리고 혼자 하는 여행이라는 것도.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핸드폰 속 지도 앱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내린 후에는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그 모든 과정이 얼마나 걸리는지 아주 친절하게 알려준다. 길을 잘못 들어도 길치라고 탓할 사람도 투덜댈 사람도 없다.
그저 혼자 허허, 이 방향이 아니군 하며 다시 걸을 뿐이다. 아이와 왔을 때 가지 못했던 제주도 서점들도 가고 싶고 아래서 구경만 했던 성산일출봉도 오르고 싶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혼자니 거리낄 것이 없다. 단출한 계획으로 왔는데 제주도 풍광을 마주하는 순간 욕심쟁이가 된다.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곳을 찾아가 내 모습도 야무지게 그려달라고 하고, 서점에 가서 제주와 어울리는 책도 골랐다. 가족 여행 때는 친구들에게 거의 연락이 오지 않는데 이번엔 친구들 연락이 많다.
"지금 어디야?"
"뭐 하고 있어?"
"사진 좀 찍어서 보내 봐."
카톡이 하루에도 여러 번 왔다. 다들 나의 여행을 궁금해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자유롭고 재미있지만 외롭기도 했다. 생각 외로 가장 큰 문제는 숙소였다. 사실 그 곳을 예약한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인데 화장실이 딸린 일인실이 있어서였다. 대중교통으로 가기도 좋고 근처에 오름도 많고 평도 좋았다.
어둑어둑해질 즈음 숙소에 도착했다. 사장님께서는 친절하게 밖으로 나와 맞아주셨다. 게스트하우스는 큰 독채 두 동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묵는 건물 1층은 주방 및 거실이 있는 공용공간이고 2층에는 1인실, 2인실, 4인실 등 방들이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신발을 정리하려는데 사장님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다.
"오늘 이 독채에는 손님만 계시거든요. 2층 예약한 방 쓰시고 1층 공용공간은 자유롭게 사용하세요."
잠시 좋았다가 이내 무서운 마음이 든다. 이 큰 건물에 나 혼자라니. 하지만 오늘 난 아주 피곤하니까 금세 잠이 들겠지. 밤이 깊었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잠이 들만하면 '딱딱' 소리가 난다. 효자손으로 원목 식탁을 두드리는 것 같은 아주 명징한 '딱딱' 소리다. 정체불명의 소리에 잠은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달아난 잠을 다시 부르려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스트레칭도 했다. 그래도 잠이 안 와 다시 조명을 켜고 책을 읽었다. 잠이 살며시 오는 것 같아 누웠는데 '딱딱' 소리가 또 나고 잠도 휘리릭 달아났다. 귀에 이어폰도 끼어보고, 자는 위치도 바꿔보고 그 소리는 또 나고 난 침대에서 내려와 숙면에 좋다는 바나나를 까서 입에 넣는다. 집의 편안한 잠자리와 가족을 그리워하다 새벽 4시에야 잠이 들었다.
다행히 다음 날엔 앞방에 손님이 왔다. 난 속으로 '야호!' 하고 외쳤다. 잠결에 '딱딱' 소리를 들은 것도 같은데 소리가 나든 말든 쿨쿨 꿀잠을 잤다.
가끔은 반갑게 맞이하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