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동료들과 함께 먹는 조식에서 생선살을 발라준 남편의 여사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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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몇 해 전, 제주도 출장에서는 남편을 뜨악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먹는 조식에서 그 선배가 가시 바른 생선살을 남편 밥 위에 얹어 주었다는 것이다.
순간, 조식 자리에 의문의 정적이 흘렀고, 남편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아니, 남의 배우자 깻잎을 잡아주는 일로도 전 국민이 핏줄을 세우는 마당에 생선 살을 발라, 그것도 굳이 밥 위에 얹어 주었다고??!!
흥분한 나는 이 행위의 뿌리가 과연 우정이냐, 애정이냐를 놓고 남편과 두고두고 설전을 벌였다. 나는 분명하게 선을 긋지 않는 남편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고, 남편은 괜한 오해일 수 있다고 했다. 오랜 동창인데 어떻게 그리 딱 잘라 말을 할 수 있느냐며 항변했다. 하지만,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려 해도 그 행위는 내 기준의 한계를 분명히 침범했다고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은퇴 후에 사무실을 차릴까를 놓고 고민 중이라 했더니 대뜸 함께 하자고 하더란다. 이제 나는 그 선배 이야기가 신경 쓰이고 거슬리기에 이르렀다. 아는 후배라서 나를 얕보는가 싶어 화도 나고, 20여 년 간 애써 꾸려 온 가족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무시당한 듯 허망한 기분도 든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의가 의심스러운 애매한 언행들을 이토록 오랫동안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표할 수가 있는가 말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었다. 흥분을 한풀 가라앉히고 보면, 사실 이 선배가 남편에게 정말 남다른 감정을 품었는지 어떤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다. 모든 것은 그저 나의 기분일 뿐이고, 추정일 뿐이다. 그러니 정확하지 않은 일에, 그 선배를 매도하여 내가 나서서 섣부른 경고나 충고를 하는 것은 자칫 경거망동일 수 있다.
주변에 이런 고민을 나누다 상담가에게 한번 조언을 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이나영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이 사안을 해결할 열쇠가 남편에게 있다고 했다(역시!). 남편에게 그 선배는 그저 여자 사람 친구일 뿐 전혀 이성적 호감을 느낀 적이 없다 해도, 아내가 느끼는 불쾌함을 방관하여 상황을 방치시키고 있음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다만, 일을 풀어나갈 방향을 생각해 볼 때, 그 선배의 언행이 현재 남편과 나의 부부관계를 정말로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오랜 시간 이어 온 남편의 우정과 인간관계가 깨지는 것을 감수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 조언을 듣고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그 선배의 애매한 행동이 수차례 거슬리긴 했지만, 남편과 나의 부부관계에 타격을 준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늘 있던 일들을 장난스럽게 다 공유해 주었고, 웬만하면 나도 남편과 그 선배의 오랜 우정을 경솔하게 깨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최종적으로 합의를 했다. 그 선배가 한 번 더 애매한 언행을 할 경우, 내가 신경 쓰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기는 하되, 관계가 어색해지지 않도록 경쾌한 톤으로 전한다는 데에 동의했다. 이로써 그간 말 많고 탈 많았던 '문밖의 여자' 사건이 깔끔하게 종결되기를 바란다.
내가 걱정하고 신경 써야 할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