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 열두 가지>(박정미 쓰고 김기란 그림) 책 표지.
최육상
책 표지를 넘기는 순간, 마지막 장까지 한번에 이끌려갔다. 전북 순창군 동계면으로 귀농한 지 5년차인 새내기 농부는 책장 사이사이 정겨운 판화 그림과 함께 주변 사람들의 진솔한 사연을 실타래 풀듯 하나씩 풀어내며 독자인 나를 끌어당겼다.
<한 그루 열두 가지>(박정미 쓰고 김기란 그림)의 박정미 작가는 '작가의 말'에 해당하는 '보내는 마음'에서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담담하게 고백한다.
"집도, 직장도 정하지 않고 시골로 내려온 저에게 마을 이웃이 밭 하나를 내어주었습니다. 마음을 내어준 밭에 마음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열두 달 농부들의 밭을 다니며 심은 마음을 무럭무럭 키웠습니다. 복순자 아짐 말씀처럼 마음을 나누려면 밭이 넓어야 한다니 이렇게 책으로 엮어 여러분께 전해봅니다. 2021년 겨울, 박정미."
맨 처음 책을 접했던 것은 지난 1월 무렵이었다. <오마이뉴스> 김현자 시민기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내게 "순창에 서점이 있다는데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순창에 서점이 있다고요?" 금시초문이었다.
확인해보니 <한 그루 열두 가지>를 쓴 박정미 작가는 순창군에 귀농해 '책방 밭'을 운영하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 지난 3월 3일 책방 밭 부근에 갈 일이 있어 박정미 작가에게 "책과 관련해 대화를 하고 싶다"고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어떤 매체와도 인터뷰는 하지 않는다"고 완곡하게 취재를 거절했다.
<한 그루 열두 가지>를 펼친 건 지난 3월 31일 저녁이었다. 첫 장을 넘겼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마지막장이 펼쳐졌다. 박정미·김기란 두 사람이 속삭이고 내보이는 글과 판화그림은 시간의 흐름을 잊히게 하는 힘이 있었다.
두 작가는 이웃 주민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겨울부터 봄, 여름, 가을로 넘어가며 계절 별 농작물과 음식 차림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을 곁들여 들려준다. 조청, 청주, 쌈 채소, 두릅, 첫 숲차, 매실, 블루베리, 고춧가루, 밤, 쌀, 대봉감, 가락엿 등 순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농사짓고 수확하느라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야기를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