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엄마는 매일매일 밝힘이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었다.
고정미
우리집은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닭을 풀어놓고 키우는 집도 있었는데, 그때 닭들에 쫓겼던 경험이 있어 지금도 너무 무섭다. 고양이가 스윽 다가오는 것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강아지도 무서워서 저 멀리서 강아지가 보이면 내가 먼저 피하기 일쑤였다.
그랬던 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갱년기를 지나면서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던 그때, 나 아닌 다른 존재를 보살피며 환기를 시키고 싶었다.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기에 넌지시 말을 꺼냈지만, 엄마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일단 돈도 많이 들고, 먼저 보내는 게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포기와 도전 사이를 반복하다가 하루는 내가 너무 힘들어 보였는지 엄마가 허락을 하셨다. 반려견을 만나기 전까지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렇게 3년 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반려견 밝힘이를 만났다.
분명 내가 우겨서 키우게 된 거였는데, 엄마는 마지 못해 허락을 한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엄마가 이 강아지에게 푹 빠져버렸다. '밝고 힘차게'라는 뜻의 밝힘이라는 이름도 엄마가 지어주었다.
밝힘이를 돌보는 것이 일상의 즐거운 자극이 된 엄마는 어느 날부터인가 노트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뭐냐고 물으니 '육아 노트'란다. 알고 보니 엄마는 매일매일 밝힘이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었다. 엄마가 잠들고 그 노트를 펴본 나는 난 눈물이 왈칵 나왔다.
"복덩이 밝힘이 이틀째 되는 날. 낯선 집에 와서 아직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 밝힘아. 할머니, 삼촌, 엄마가 사랑을 많이 줄게.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다오."
"오늘은 밝힘이가 기분이 좋은가보다. 깡충깡충 뛰면서 잘 논다."
"밝힘이가 힘이 없는 것 같다. 밤새 울타리를 탈출하려고 힘을 많이 쓴 것 같다. 애미가 병원에 데리고 갔다. 아무 일 없다. 와서도 저도 지쳤는지 오래 잤다. 오늘은 장난도 잘 치고 오래오래 놀다가 잠자러 들어간다. 귀여운 밝힘. 예쁘다."
"오후 늦게 행동이 이상했다. 자꾸 자리에 가서 눕는다. 결국 9시 30분쯤, 설사를 찍찍 한다. 두 번씩이나. 병원으로 둘이서 달려갔다. 검사 결과 장염이라고 주사 맞고 약먹으면 괜찮을 거라고 한다. 가슴이 덜컥. 밝힘이가 활발해졌다. 설사한 거라 회복이 빨리 되지는 않은 것인지 조금 그렇다."
"오늘은 삼촌이 하루종일 밝힘이와 같이 놀아주었다. 외출해서 오니까 반갑게 쳐다본다. 귀여운 것. 힘이 넘친다. 명랑하고 씩씩하다. 뛰는 것 보면 운동선수가 되려나 하고 웃는다. 점프를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