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를 단행했다고 3월 25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신형 ICBM 시험발사를 단행할 데 대한 친필 명령서를 하달하고 시험발사 현장을 직접 찾아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전 과정을 직접 지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핵 공포'는 '열망'으로 바뀌었다. 바로 '핵 무장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64년이 흐른 2017년 11월29일 북한은 정부성명을 통해 미국 본토 전역을 사정거리에 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 성공 소식을 전하며 "국가핵무력 완성의 력사적 대업, 로케트 강국의 위업이 실현되었다"고 천명했다. 이로써 북한은 '핵 열망'을 달성했다. 이보다 앞선 2017년 9월 3일 6차 핵실험후 정부 비망록을 통해 "미국의 핵위협 공갈은 우리를 핵억제력 강화의 길로 떠민 근원"이라며 핵무장을 정당화했다.
김정은은 공식 집권 후 2017년까지 네 차례의 핵실험과 총 87회의 미사일을 시험 발사함으로써 핵무장을 완성했다. 2013년 4월 '자위적 핵보유 지위법률', '우주개발법'을 채택해 제도화했으며 2017년 9월 김정은 직할 '전략군'을 창설하고 핵무기를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체계도 갖췄다.
이같은 행보는 ▲ 핵·미사일 도발의 일상화, 제도화를 통해 핵무력 건설 전력투구 ▲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체계 구축완성 의도를 명백히 한 것이다. 이는 미국을 상대로 '핵 모호성'에 기반한 '실존적 억지'에서 '최소 핵억지' 전략으로 바꾼 것이라 할 수 있다.
'최소 핵억지'는 "핵을 갖고 있으면 최소한 공격은 안 받을 것"이란 믿음에 따라 수십개 이상의 핵무기와 정밀도 높은 탄도미사일를 운용한다. 핵 공격 대응으로만 사용한다는 '선제불사용' 원칙에 따라 주로 탄두와 미사일을 분리 운용한다. 미국, 러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핵무장 국가가 이에 해당한다. 때문에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볼 때 이 경우에는 완전한 비핵화(CVID)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북한 핵 전문가 해커 박사는 지난해 4월 북한의 핵보유 숫자를 45개로 추정했으며, 존 사노 전 미국 CIA 부국장은 지난 3월 북한이 앞으로 5년 이내에 2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핵보유 숫자를 2018년 기준으로 최대 60개 이상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종합해 보면 북한 역시 '최소 핵억지' 수준에 도달했으며, 한반도 비핵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한반도 뉴노멀' 시대가 열린 셈이다.
북한은 4년의 단기간에 걸쳐 집중적인 고도화 작업과 이를 과시한 후 마치 준비한 듯 '핵무력 완성'과 '전략국가'를 선포했다. 매년 모든 사거리의 미사일을 전시하듯 발사했고 재진입 기술이나 타격 정밀도 등이 불확실함에도 조급하게 '완성'을 선언했다. 이같은 핵무장 완성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것이다. 그 후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극적인 반전을 꾀하고 평화 협상에 나섰다. 김정은의 초조감이 묻어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이 김정은을 초조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미국 핵위협에 맞선 핵 무장'을 이뤘으니 다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노선'이 핵심"
김정일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자신의 책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에서 "김정은이 2000년경부터 중국 경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북한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중국의 방식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확인 불가능하다. 다만, 김정일 와병(2008년 8월)후 사실상 '김정일-김정은 공동정권'이 출범하면서 김정은은 2009년 8월 자신의 주도하에 '개혁개방 전략수립팀'을 당 서기실 산하에 구성했다. 이 팀은 ▲ 북한의 향후 개혁개방 전략 ▲ 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법과 정책 방향 등 미래 국가전략 밑그림을 그려 김정은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은 2012년초 내각에 '경제관리방식 개선을 준비하는 소조'를 구성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로두철 내각 부총리가 단장을 맡아 꾸려진 이 소조는 북한의 경제개혁 방향을 담은 '6·28 방침'을 작성해 김정은에게 보고한 후 당 내부에 공표했다. 김정은의 경제정책인 셈이다. '6·28 방침'의 세부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산업 전반에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우리식 경제관리체계'가 핵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13년 3월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을 발표했다. 핵-경제 병진 노선은 '사회주의 강국'을 위한 실천 전략으로 경제건설은 국방건설을 바탕으로 가능하다'는 논리다. 이것은 1963년에 김일성이 발표한 국방-경제 병진 노선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핵심은 북한의 핵개발이 체제 안정을 넘어서 인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경제 정책이기도 하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데에 있다.
이같은 당시 북한의 행보는 핵전략(비핵전략)을 정치적이고 장기적인 국가 전략 속에 진행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북한이 내세운 국가 전략 목표는 핵 보유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강성대국'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사회주의 강성대국'이란 개념은 김정일 시대 초기인 1998년 8월 22일 노동신문을 통해 처음으로 언급됐으며 정치·사상 강국을 바탕으로 경제강국을 건설하자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김정은은 2016년 5월 9일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북한이 지향해야 할 최종 목표가 '사회주의 강국 건설'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총화 보고를 통해 사회주의 강국을 위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하며 인민생활 향상과 직결되는 경공업 부문에 상대적으로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에는 북한의 핵심 경제 규범이라 할 수 있는 '계획'부문의 역할 축소와 시장 부문의 활용도를 증대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시에 "… 과학기술과 생산이 일체화되고 첨단기술산업이 경제성장에서 주도적으로 역할하는 자립경제 강국, 지식경제 강국이 바로 사회주의 경제강국"이라고 정의 내렸다.
핵무력 완성을 통한 안보균형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경제강국'을 건설하겠다는 게 김정은의 국가전략인 셈이다.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CVID)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그들이 2019년 하노이 회담에서 '핵폐기'가 아닌 '핵군축' 협상을 마무리하고 제재 일부를 완화하는 것으로 목표를 설정한 배경이다. 당시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전술핵 용인을 요청했으나 존 볼튼 등이 나서 이를 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김정은, 대중국 포위 수단으로 핵 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