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로타리 3620지구(충남) 문수협 SNS위원장.
최미향
그는 오늘도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행사장을 누빈다. 때로 장비가 무거워 팔이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시간을 보내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는 아픈 어깨를 시트에 뉘이는 사람이다. 그러다가도 로타리 행사장이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카메라를 메고 렌즈 속에 사람을 담아내는 참 무딘 사람.
지난 1일, 왜 카메라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냥"이란다. "그냥 카메라로 세상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처음으로 거금을 들여 산 카메라로 눈과 가슴에 담을 물체를 30년째 렌즈에 담는 문수협 국제로타리 3620지구(충남) SNS위원장. 찻집 창가에 앉아 지나온 삶의 발자취를 들어보았다.
- 고향은 어디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달라.
"서울 어린이대공원이 개장했다는 소리가 연일 뉴스를 타고 흐르던 1973년 그해 5월, 태안군 안면도 신야리 샛별해수욕장 인근에서 남자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이가 바로 1남 2녀 중 첫째로 세상에 태어난 남평문씨 21대손 문수협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농사반 어업반으로 늘 바쁜 가족들을 대신하여 바닷가 해당화를 간식 삼아 먹고 자랐다. 또 그때는 친구들로부터 농협, 축협, 수협, 신협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나도 멋진 이름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은 제법 재미난 이름 하나로 내 이름 석 자를 금방 각인시키는 재미도 있지만 말이다.
속상할 때면 집 대신 바다로 나가 애꿎은 모래를 던지며 고기잡이배를 몰고 이른 아침에 나간 가족들을 기다렸다. 저 멀리 불빛을 밝히고 돌아오는 배를 보면 할아버지일까 싶어 한달음에 달려가 손을 흔들곤 했다.
어느 날은 어두운 밤을 몇 번이나 보내도 할아버지 배가 돌아오지 않았다. 당신은 그렇게 2박3일을 망망대해 바다에 떠다니시다 구사일생으로 돌아와 나를 안아주시며 '우리집 장손 장손~'하시며 뺨을 부비셨다.
나는 그때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빼어날 수 (秀), 도울 협(協) '수협(秀協)'이란 이름이 어쩌면 하늘의 도움으로 가족의 안녕을 염원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