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점 기세춘 선생
심규상
1960년 4·19혁명에 가담했고, 1963년에는 동학혁명연구회를 만들어 후진국 개발론, 통일문제 등을 파고들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신영복 교수 등과 함께 '통혁당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대전에서 작은 기계공장을 운영하며 사출기, 자동포장기 등을 손수 설계, 제작했고 '평화통일연구회' '사월혁명연구회' '전북민주동우회'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국민화합운동연합' 등에서 활동했다.
1990년대 초까지 당국의 감시를 받던 그는 '세상이 갑갑해서' 시작한 동양고전 번역작업으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첫 작품 <묵자-천하에 남이란 없다>(1992)'를 시작으로 1994년에는 문익환 목사가 감옥에서 그 책을 읽고 기세춘 선생과 편지를 주고받은 <예수와 묵자>를 출간했다.
"묵자를 읽지 않고는 감히 진보를 말하지 말라"
같은 해 신영복 교수와 <중국 역대시가 선집> 4권을 공역했고, 2002년에는 <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새로 읽기> 시리즈로 유가·묵가·도가·주역을 출간했다. 2005년에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동양사상 바로 알기'를 주제로 <동양고전 산책> 상·하를 출간했고, 2007년에는 고전 재번역 운동의 일환으로 <장자>를 완역했다. 또 중국과 조선의 성리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성리학 개론> 상하를 출간했다.
2008년 <노자강의>, 2009년에는 <묵자>, 2009년에는 <논어 강의>를 출간했다.
그는 대전 지역 내 수 많은 사회운동가에게 병환 중에도 동양고전을 통한 평화운동과 진보주의 사상을 알리는 데도 주력했다. 묵자 전문가이기도 한 고인은 특히 사회운동가들과 노동자들에게 "묵자를 읽지 않고는 감히 진보를 말하지 말라"며 묵자의 평등주의 사상을 설파했다.
선생의 빈소는 남대전장례식장(대전 동구 산서로)이며 발인은 오는 8일 오후 2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