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몬이 만든 토마토 계란 새우 볶음 '춤의학교'에 가는 주말 아침에 요리한 토마토 계란 새우 볶음을 춤벗들과 함께 먹는 점심상에 공개했다
곽승희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권세가들은 뛰어난 요리사를 자신 곁에 두는 게 중요했다고 한다. '한몬' 덕에 그 왕들이 부럽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내가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권력과 돈이 없음에도 반려자가 있다는 것. 그가 요리를 일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 중병에서 회복 중인 동반자가 춤을 추러 다닐 때 도시락을 싸준다는 것.
물론 처음부터 그가 이 모든 일을 작정한 것은 아니다. 그의 돌봄이 노동이자 활동이자 예술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렇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신의 뜻을 발현하는 성자에게는 그 기적의 현장에 함께 할 관찰자가 필요하다. '한몬'이 요리를 시작하면 나는 신성한 관찰자로서 그의 옆에 선다. 재료를 요리로 변형시키는 일은 매번 보는 일이지만, 매번 존경스럽다.
그의 어깻죽지가 조리대 위에서 연분홍색 연어를 토막 내며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움직인다. 프라이팬을 잡은 그의 손목이 흔들거리며 연어 기름으로 양파와 대파를 볶는다. 식탁 위 올라온 그의 손가락이 잡곡밥을 손바닥에 펼친 후 볶은 연어와 야채를 올린다.
꽉꽉 채운 속 덕분에 주먹밥 겉면이 씰룩씰룩 입을 벌린다. 손가락이 누르면 주먹밥이 출렁이고, 나는 웃음이 터진다. 웃음이라는 음악이 배경에 깔리고, 그의 손길이 춤을 추고, 나는 다시 입 안의 느낌에 어깨를 들썩거린다. 우리는 함께 '춤'을 춘다.
그는 알 수 없었다, 요리의 즐거움을
내가 춤의 세계로 입문하기까지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했던 것처럼, '한몬'의 요리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공간이 핵심이었다. 살던 집을 떠나 서울로 일하러 온 청년이 머물던 원룸은, 대부분의 방들이 그러하듯 요리를 시도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원룸에 걸맞은 작은 냉장고는 남은 식재료와 음식을 보관하기 적합하지 않다. 냉장고에 걸맞게 작디작은 싱크대 안에는 그릇 몇 개만 내려놔도 탑이 쌓인다. 분리되지 않은 부엌에서 흐르는 냄새는 옷장 안 수납 공간에 들어가지 못한 행거 위 옷들에 자리 잡는다.
뭐든지 익숙해지려면 시도해 보는 용기와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정책은 청년들이 직접 밥 해 먹는 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독립했거나 독립적인 청년들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생명에게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를 만드는 일이 이렇게 힘들다니.
물론 몇 년 전부터 청년지원센터나 정책이 자리 잡으면서, 지자체마다 청년들에게 공유 부엌을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들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공유 부엌에서 밥을 먹는 일은 관계를 전제한다. 그곳까지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 낯선 이들과 요리해서 함께 먹을 체력도 남아 있어야 한다.
청년 대상 공유 부엌 정책은 매우 혁신적이지만, '한몬'은 한 번도 그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했다. 일단 동마다 지근거리에 있는 노인정과 달리, 그의 거주 지역구에는 공유 부엌을 운영하는 청년센터가 딱 한 곳이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곳에, 야근이 잦은 그가 공유 부엌 프로그램 날짜와 시간을 맞춰 방문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신이 얼마나 요리에 능력 있는 사람인지 알기 전까지, 꽤 많은 시간 동안 배달 음식을 주식 삼으며 보내야 했다. 요리에 도전하고, 요리를 즐기고, 동반자와 친구들에게 요리를 나눌 수 있는, 인간이라면 아주 기본으로 누릴 수 있는 그 능력을.
자기만의 '춤', 그리고 그걸 알아봐 줄 '누군가'
몇 가지 우연이 겹쳐 함께 살기로 결정한 후 우리는 방과 분리된 부엌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의 첫 집은 비록 버스정류장에서 10분 정도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하는 봉우리 밑에 있지만, 이전 집에 비하면 부엌만큼은 쉐프급이다.
부엌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사이 세 군데 빈 공간이 있다. 한 곳엔 다양한 양념통을, 한 곳엔 정수기와 전기포트를 두었다. 나머지 한 곳은 조리공간으로 사용한다. 여기서 '한몬'의 수많은 역작들이 준비 단계를 밟았다.
요리 초반에는 따라 하기 쉬운 유튜브 채널, 대표적으로 요리연구가 백종원씨의 레시피를 따라 했다. 올리브 오일 파스타와 레어 스테이크, 떡볶이와 각종 볶음밥 등. 가끔 '한몬'이 고향 집에서 먹거나 명절마다 가족들이 함께 만든 음식도 재현했다. 감자전, 동태전, 육전, 새우전 등등.
나의 암 진단 이후 '한몬'은 건강식 채널을 즐겨본다. 최소한의 조미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거나, 건강한 식재료가 조화로운 음식을 만든다. 특히 요즘에는 육고기 대신 물고기를 활용한다. 연어 타르타르, 연어찜, 연어 간장조림, 연어 계란 장, 대구 찜, 대구 간장 조림, 황태채 무침 등등.
그의 요리 레퍼토리가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우리의 선후배,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게 됐다. 수육과 오코노미야키, 우육탕면이 가장 자주 나눈 음식이다. 재료와 요리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고, 함께 음식을 먹는 기쁨과 감동을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