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있는 신입을 찾습니다신입에게 경력을 찾는 세태를 개그로 승화한 짤
SNL KOREA
회사생활 경험이 있는 신입사원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고급인력들이 어떤 능력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들떠 있을 때, 질문 하나가 훅 들어왔다. "그런데 중고라는 표현이 사람한테 쓰기에는 좀 부적절한 것 같지 않아요? 경력 있는 신입이라든지 다른 표현이 더 좋을 것 같은데 뭐가 있을까요?"
무언가에 맞은 느낌이었다. 별생각 없이 사용하던 단어의 뉘앙스를 곱씹게 되는 계기였다. 흔히들 말하듯 말에는 힘이 있다. 무형의 말은 쓰면 쓸수록 실체가 생기고 내재화된다. 말에는 우리의 무의식이 들어 있고 또 그 말이 우리의 생각을 프레이밍 해 세상을 보는 관점과 태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중고 신입'이란 말은 그런 의미에서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를 담아낸다. 직장생활 경험이 있음에도 다른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지원자를 '중고 신입'이라고 하는데 중고란 흔히 사물과 결합해 쓰인다. 중고 가구, 중고 피아노, 중고 가방 등 이미 사용했거나 오래된, 좀 오래된 낡은 물건을 의미한다.
즉, '중고 신입'이란 말에는 '사람의 사물화' 세태가 반영되어 있다. 이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따위를 합하여 이르는 말인 '스펙'과 결을 같이 한다. '스펙'도 흔히 자동차와 컴퓨터 사양을 가리킬 때 쓰는 스페시피케이션(specification)의 줄임말로, 기기나 시스템의 성능 제반을 의미하는 말인데 어느새 우리의 경험과 노력치를 표현하고 있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스펙 쌓기, 스펙 업, 합격 스펙 등... 과도한 취업 경쟁에서 본인을 잘 팔기 위해 스스로 사물화되고 도구화되는 시대의 모습이요, 자화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중고 신입' 증가는 시대의 결과물
잡코리아가 '22년 상반기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취업 스펙을 조사한 결과 '인턴십' 경험 보유자는 27.0%로 '20년 47.8%에 비해 크게 감소했고 '해외 어학연수' 취업 스펙도 '20년 25.2%에서 13.5%로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외활동' 경험자 역시 41.1%로 작년 대비 3.0% 포인트 감소했다고 한다. 2년이 넘는 코로나 상황으로 취업시장에 막 발을 들인 신입들은 스펙 쌓을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팬데믹으로 취업 스펙 쌓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설상가상 기업들의 채용 공고까지 줄어 실제로 올해 2월 4년제 대학 졸업생 중 22.7%만 정규직 취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채용시장 트렌드도 신입 공채보다는 직무 중심 수시채용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경력을 쌓을 길이 없는 신입 구직자에 견주어 경력을 보유한 중고 신입(올드 루키)에 비교우위가 주어지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중고 신입을 선호하는 입장은 쉽게 이해가 간다. 작년 사람인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중고 신입에 대한 만족도가 경력이 없는 신입에 비해 14.3점이 높았다. 그리고 성인 남녀 2명 중 1명 이상이 경력을 포기하고 신입으로 지원한 경험이 있다고 답할 정도로 중고 신입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모두 크다. 시대의 결과물로 중고 신입의 풀이 커진 것이다.
재수생과 중고 신입의 증가, 우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