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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체육대회' 막은 지자체, 법원 "법 앞에 평등" 일침

[분석] 1심 원고 패소 뒤집은 항소심 판결 "공사 때문이란 이유 납득 안 돼... 성적 지향 차별"

등록 2022.05.18 11:36수정 2022.05.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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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여성네트워크가 2017년 9월 당시 체육대회 행사를 알린 포스터. 대관 불가 통보로 결국 체육대회는 개최되지 못했다. ⓒ 퀴어여성네크워크

 
"해외에서 제가 전화를 해야 할 정도로 사건이 좀 커졌어요."
"혹시나 다른 장소는 섭외가 안 되나요? 실외에서 할 수 있는 곳?"
"구청의 지시를 받아서 하는 거라... 그 쪽(구청)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냐는 뉘앙스의 의견을 들었어요."


2017년 9월, 퀴어 여성 생활 체육 대회 준비를 마무리하던 퀴어여성네크워크 소속 언니네트워크 측은 체육관을 대관해주기로 했던 동대문구시설관리공단 측으로부터 갑작스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21일 일정을 진행하는 것으로 하고 대관료 150여만 원을 지불해 체육관 사용 허가를 받은 상황이었다.

담당 직원은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 제목이 적힌 포스터 이야기도 꺼냈다.

"포스터도 봤어요. 저도 그거 보고 (그래서) 저희 쪽으로 자꾸 전화가 오는 것 같아요."

민원이 들어오니,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취지였다. 담당자가 '문제'로 언급한 포스터에는 자그마한 무지개 깃발 그림과 풋살, 배드민턴 등을 표현한 픽토그램 3개가 그려져 있었다.

하루가 지난 다음 날, 대관 취소 통보가 날아왔다. 바로 전날 공단 측이 설명한 것과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대관을 해주기로 한 날 태양광 공사를 하기로 했으니 공간을 열어줄 수 없다고 했다.

대관 안 된다더니 다른 단체는 'OK'... 성적지향 대하는 이중 잣대


활동가들은 "공사 일정 조정이 불가할 경우 다른 날에라도 대관을 요청하겠다"고 했지만, 모든 일정이 마감됐으니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이 아니었다. 같은 날 오전 대관하기로 했던 어린이집의 경우, 그해 11월로 대관 일정을 빼주었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이후 동대문구청과 시설관리공단,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다. 1심에선 손해를 증명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그러나 지난 13일,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구청과 시설관리공단의 행위는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한 차별이고, 체육대회 개최 준비자들과 예상참가자들에 대한 차별"이라는 판단이었다. 지자체로부터 성소수자 체육대회 불가 판정을 받은 지 약 5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서울서부지법 제2-3민사부(부장 박성규)는 지난 13일 이 같은 판결을 내리면서 헌법 11조 1항을 언급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조항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 3항도 나왔다.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특정인을 배제하는 행위는 평등의 원칙에 반하므로 위법하다"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책임기관인 동대문구청에도 책임을 물었다. "피고 동대문구는 이 사건 체육관 운영의 위탁자이자 감독자로서 피고 공단에 대관 허가 취소를 지시했거나 적어도 이를 함께 결정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판단이다. 소를 제기한 언니네트워크에는 500만 원, 다른 원고 4인에겐 각 100만원 씩 지연이자와 함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었다.

"공공시설 성소수자 행사 배제, 불법 행위 명확"

항소심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대관 허가 취소 무렵 이 사건 대관 허가를 취소해서라도 공사를 시행했어야 할 급박한 필요성이 있었다는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피고 공단은 체육대회 예상 참가자들의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대관 허가를 취소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지자체의 일방적인 대관 취소 통보로 해당 단체가 입은 피해도 가늠했다. 재판부는 "대관 취소 때문에 참가 신청자 및 후원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신청비 및 후원금을 개별적으로 환불해 주기 위해 상당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면서 "뿐만 아니라 체육대회를 계획대로 개최하지 못해 단체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저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언니네트워크는 지난 17일 승소 소식을 알리면서 "이번 판결이 그동안 반복되어온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의 성소수자 공공시설 이용 차별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공공시설에서 성소수자 행사를 배제하는 차별행위는 직접적인 대상자 뿐 아니라 예상 참가자 모두에게 중대한 손해를 입히는 불법행위라는 점이 명확하게 이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소수자 #인권 #차별금지법 #평등 #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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