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치르고 있는 학생의 모습.
연합뉴스
5월이 되며 아이들의 얼굴이 구분이 되고 절반 정도와는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모든 아이들이 다 소중하고 사랑스럽지만 작년에 만난 아이들은 마음이 더 쓰이고 각별히 살피게 된다. 수업 시간에 엎으려 있거나 표정이 좋지 않으면 가까이 가서 별일은 없는지 조용히 묻곤 한다.
가까이 가서 인사를 건네면 대부분 아이들은 자다가도 벌떡 잠이 깬다. 관심을 가져 준 때문인지 잠깐은 수업에도 집중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민망함으로 눈을 비비며 비몽사몽 일어났다가는 다시 엎어지는 아이도 있고 간혹 너무 친근하게 느껴서인지 "피곤해요"라고 어리광 부리듯 말하며 다시 푹 쓰러지는 아이도 있다.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조금 참아보자고 독려하지만 효과는 길게 가지 못한다.
얼마 전 1차 지필평가가 끝났다. 대강의 성취도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업 중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집중하는 학생이 높은 성취를 보이면 저절로 칭찬과 응원의 박수가 나온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본인도 뿌듯하겠지만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뿌듯하다.
더구나 학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수업에 잘 참여하고 복습하는 것만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어른스럽게 말하는 학생은 마음까지 기특하고 예쁘다. 교사의 입장까지 두루 생각해서 하는 말임을 알기에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1차 지필평가를 앞두고 시험 범위까지 진도가 다 나가 자습 시간을 주었을 때, 수업 시간이면 매번 쓰러져있던 학생이 모처럼 눈을 뜨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오늘은 열심히 한다고 하며 표정이 좋아 보여 다행이라고 했더니 그 학생은 백과사전 두께의 문제집을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몇 개의 교과를 묶어 시험 대비용으로 학원에서 만든 문제집이었다. 그걸 보여주며 나름 열심히 공부하며 시험 준비를 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문제집의 두께에 우선 놀랐다. 매일 쓰러져 자던 그 학생이 그걸 다 풀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공부를 전혀 안 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간의 걱정스러운 마음이 해소되기도 했다. 비록 내 수업에는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지만 나름의 공부를 하니 진심으로 결과가 좋기를 바랐다.
시험이 끝나고 그 학생의 성적이 궁금했다. 성적을 확인하니 대부분의 교과가 평균을 밑도는 점수였다. 교실에서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시간에 그 학생은 다시 쓰러져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학생을 깨웠지만 이전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오늘도 그 학생의 얼굴은 잠시 깨우는 동안 본 것이 전부였다.
얼굴빛은 더 어두워진 것 같았다. 맥없이 쓰러져 있는 순간은 10대의 학생이라고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대로 둬야 하는 것일까? 담임교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학부모와 상담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학생의 모습을 부모에게 사실대로 알리고 진지하게 의논이라도 해야 할까? 의논하면 이후 학생의 모습은 달라질까?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을 건사하기 위해, 그들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교육의 연차가 늘수록 아이들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두려움도 커가는 것 같다. 혹시라도 돌아올 반항도 그렇고 깊이 개입해서 혹여 원망이라도 듣게 된다면 후회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 검열하듯 한 발 더 나가지 않고 멈추는 선택을 하는 이유다. 교육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처럼 두려움을 조금 덜 느낀다면 조금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하나둘 쌓인 쓰린 기억은 행동을 주춤하게 만든다.
학교 수업시간에 학원 숙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며 그들의 공부방법이 한참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시험 문제는 교사가 출제하는데, 기본 이론이나 개념은 무시하고 있고 귀는 닫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이 노력한 만큼의 학습 성취가 보였다면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러나 시험 결과는 조금의 의지마저도 꺾어버린 것 같았다.
학원에 기대는 학생일수록 수업시간에 자도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 아니 수업시간에 자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대놓고 하소연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들에게 학교 교육은 학원을 위한 유연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았다. 학원과 학교의 위치가 바뀐 느낌이랄까. 학교에서의 다양한 수업 활동은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나누는 활동, 서서히 지속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교육과정은 지루할 뿐.
학교에서라도 자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아이들에게 학원을 끊으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학원을 끊고 학습의 성취를 온전히 책임져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과목에 따라 단시간 문제풀이로 반짝 결과를 보이는 경우도 있고. 그러나 학교 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성적으로만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수많은 것들 중 성적은 그 일부일 뿐이다. 학교는 무수히 많은 활동과 그 과정에서의 학생들의 태도와 열정도 지켜보고 기록으로 남긴다.
학생과의 미묘한 신경전... 바로잡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두 부류다. 학원에 기대는 아이와 학원에 의지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학생. 학원을 열심히 다니는 아이일수록 학교에서의 수업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교사의 농담도 메모하고 수업의 상황을 그리듯 학습에 참여한다. 교사가 강조하는 것을 꼼꼼히 체크하고 단원의 학습 목표를 늘 염두에 둔다.
5월, 날씨는 쾌청하지만 오늘도 수업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1교시는 등교하느라 피곤해서 자고, 3교시는 한두 시간 공부했으니 피곤해서 또 자고, 5교시는 점식식사 후라 식곤증으로 자고... 원격 수업이 길어지며 집에서 편한 자세로 수업에 참여하던 버릇이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다 잠자지 않고 모두 눈을 뜨고 있는 학급을 만나면 고맙고 기특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교실에서의 이런 분위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교과의 선생님도 똑같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고 비슷하게 대처한다. 그러나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모두들 생각한다. 대놓고 잠자는 학생들을 보며, 타일러도 보고 엄하게 얘기도 해보지만 바뀌지 않는 상황에 교사로서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나아가 대입에 필요 없는 과목이라고 당당히 말하며 다른 교과를 펴 놓고 버젓이 인터넷 강의를 듣는 학생도 더러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원격수업이 오래 진행되는 동안 많은 학생들이 대부분 태블릿 PC를 갖고 있다. 학급 전체의 절반 정도가 태블릿을 학교에 가져오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수가 많아진다. 아침에 휴대폰은 수거하지만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요즘은 태블릿은 기본, 스마트 워치도 아이팟도 당당하게 지니고 있고 학교의 공공 와이파이는 학생들을 자유의 세계로 이끈다.
그 모든 것들을 이용해 눈에 띄지 않게 음악을 들을 수도, 게임을 할 수도, 영상을 볼 수도 있다. 교사의 눈에 뜨이면 제지하고 타이르지만, 그 수가 많고 매시간마다 반복되면 교사도 의욕을 잃고 만다. 매번 학생과 미묘한 신경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을 애써서 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내용은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 함양이 가능한 교육과정, 학습자의 삶과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과정, 지역 학교 교육과정 자율성 확대 및 책임 교육 구현, 디지털 AI 교육환경에 맞는 교수 학습 및 평가체제 구축'이 중점 내용이다.
학원과 비교되는 현장인 학교는 지식의 전달 측면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인성 교육을 강조하지만 지난 2년간 아이들은 규칙보다는 자율에 익숙해져 버렸고 모든 교육은 잔소리가 되어 버렸다. 그걸 바로잡기에는 서로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학교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 함양이 가능한 교육과정'을 표방하지만 학원과 경쟁해야 하고, '디지털 교육환경에 맞는 교수학습 체제의 구축'을 중점 내용으로 하지만 쏟아지는 디지털 콘텐츠와도 경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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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3년차... 지금 학교의 경쟁 상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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