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엄마, 유연한 직장인, 나를 소모하지 않는 내가, 일도 잘 하고 아이도 잘 볼 수 있는 진짜 슈퍼우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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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더 자세히 해줄게. 나는 일이 중요하고, 일을 안 하면 못 살고, 주부와 엄마로만 살길 원하지 않아서 독박육아를 할 때 우울증이 왔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다시 일을 시작하면 바로 괜찮아질 줄 알았지. 그래서 아이가 10개월 때 취업 준비를 했고 감사하게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됐지. 그런데 최종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 내가 기뻐했던 순간은 5초에 불과했어.
회사에서는 당장 그다음 주부터 바로 출근하길 원했거든. 당장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하나, 어린이집에 자리가 있을까, 합격이라는 기쁨 대신 엄마라는 슬픔이 몰려왔지. 날 대견해 하고 축배를 들어야 할 시간에 집 근처 어린이집에 전화를 돌리고 남편과 상의를 해야 했어. 물론 아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거였지만, 눈물이 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거였지.
출근 후엔 매일 매일이 '멘붕'의 연속이었어. 아이 어린이집 등원 전쟁 치르고, 출근 전 장보고, 아이 반찬 만들어 놓고, 저녁에 먹을 국 끓여놓고, 빨래와 청소 집안일을 하고, 시간에 쫓겨 내 일 준비는 제대로 못 하고, 옷만 바꿔 입고 운전대를 잡았지.
퇴근 후엔 아이를 꼭 껴안아 주고, 저녁을 먹고, 잠깐 놀아준 후 목욕시키고, 재우고, 밤 10시 '육퇴'를 하고 나면 해야 할 일들이 또 남아 있었어. 뜨거운 물 샤워를 하고 머리카락에 물이 똑똑 떨어지는 채로 깜깜한 식탁에 앉아 챙기고 주문하고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적어가며 깜빡깜빡 졸았지.
온종일 정신없고 피곤하고 졸리고. 시계를 얼마나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지. 가만히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책장을 넘기며 글을 읽는 것도 사치더라. 시간도 없고 체력도 없는데 시간과 체력이 제일 많이 드는 때였지. 출산 전 일만 했었고, 아이를 낳은 후 육아만 하다가, 이제 그 둘을 똑같이 갑자기 한꺼번에 다 잘 하려고 하니 붕괴되는 건 멘탈만이 아니었어.
일할 때는 어땠냐면 10년 넘게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뉴스 진행은 내가 제일 잘 하는 일이었는데 자꾸만 오독을 하는 거야. 스튜디오에 앉아 녹화를 하고 있으면 손가락이 점점 붓고 어깨와 허리 통증이 심해지더라고. 내 경력과 실력으로 뽑힌 자리인데 실수를 반복하니 능력이 부족해 보이고 회사에는 면목도 없고, 자책하게 되고. 집에 와서도 너무 힘들고 피곤하니까 아이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 말이야.
의지로 되는 건 체력과 여건이 받쳐줄 때 가능하더라. 그러니까 너는 힘과 환경을 꼭 만들어야 해. 복직을 앞두고 엄마가 해야 할 우선순위의 준비지. 그런데 처음엔 일도 잘하고 싶고 아이도 잘 보고 싶은 의욕에 슈퍼우먼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거든. 혹시 너도 그런 마음이 올라오거든 이 문장을 읽어봐 내가 한 칼럼에서 보고 밑줄 친 문장이야.
'슈퍼우먼이 돼보려고 돈도 벌고 애도 보다가 평범한 인간임을 깨닫고 결국 사표를 낸다.'
우린 그만두지 말자. 슈퍼우먼 되지 말자. 아이도 일도 나도 소중하니까. 이제 우린 무한한 발전과 성장보다 유지와 지탱이 더 중요한 생의 시기가 됐잖아.
사실 엄마가 평범한 인간이라 사표를 낸다기보다 여성이 돌봄과 일 모두를 떠안아야 하는 구조와 워킹맘에게 더 유연하지 못한 근무환경과 인식, 더 넓은 보육 지원 등 많은 원인이 있지.
우리가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경험한 우리가 말할 수는 있잖아. 엄마의 말은 귀해. 수다부터 토론까지 많이 말하자. 나도 없는 체력을 끌어모아 말하고 쓸 거야. 내가 아끼는 동생이, 직장 후배가, 수많은 워킹맘들이 더 수월하게 일하고 아이 키울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거든.
나의 멘붕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던 건 운동을 시작하고, 아이 반찬은 사 먹이고, 피곤하거나 해야 할 일이 많은 날에는 배달 음식 시켜 먹고,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 맡기고 혼자 카페에 가서 두세 시간 커피 마시면서 책 보고 글 쓰면서였어. 포기가 괜찮아지게 하더라고.
무질서 뒤엔 질서가, 혼돈 뒤엔 안정이 오더라. 노력과 견딤과 시간이 만들어 낸 거지. 그 과정에서 아주 힘들었지만, 다시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야 합격의 축배를 제대로 들 수 있을 것 같아.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건 슈퍼우먼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너와 나, 세상 모든 엄마들이라고 생각해.
멘붕이 올 때마다 네 주변의 선배 워킹맘들에게 전화해. 누구보다 너의 고생과 힘겨움을 이해해주고 짜증과 한탄을 받아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야. 같은 경험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줘. 그것이 육아라면 더 하지. 진짜 지치는 날엔 아이를 누군가와 어딘가에 맡기고 주말에 호캉스를 하자. 거기서 잠만 자는 거야. 격하게 쉬는 거야.
출산 후 우리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예전과 달라졌어. 이제는 일 하면 일을 안 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해. 일보다 쉼의 양이 조금 더 많아야 유지가 돼. 쉽지 않겠지만 노력하자.
기억해! 적당한 엄마, 유연한 직장인, 나를 소모하지 않는 내가, 일도 잘 하고 아이도 잘 볼 수 있는 진짜 슈퍼우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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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첫 돌 전에 재취업, 기뻐했던 순간은 단 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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