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지 중 돼지와 개 고철작품 앞에 앉은 정경수 정크아티스트.
최방식
'정크아트' 이야기를 시작하며 그는 좀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말 뜻 그대로 '쓰레기예술'로 혹평이나 오해를 사고 있어 그렇단다. 20여년 전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정크아트에 돈벌이에 눈먼 이들이 앞다퉈 뛰어들다보니 상업화로 오염됐다고 한다. 예술가들이 표현을 바꾸자고 했을 정도란다.
"정크아트는 포스트모던의 한 분야죠. 서구에선 60여년 넘은 역사를 가졌고요. 팝아트의 영향을 받은 설치미술의 한 가지죠. 국내선 2000년대 초 사용됐어요. 인식이 좋아 너도 나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했죠. 예술이 제품산업 수준으로 전락했고요. 지자체 축제엔 수입제품까지 동원됐지요. 일부는 다시 고물상으로 버려지고요."
전통 예술사회 역시 정크아트를 불편해 했다. 왜, 하필 쓰레기로 예술을 하느냐고 말이다. 불가리아 태생 설치미술 랩핑(어스워크 또는 랜드아트로도 불림) 작가 크리스토는 2021년 파리 개선문을 보자기로 감싸 16일 간 전시했다. 1961년 기획·제안했는데 60년 만에 성사됐다. "이게 예술이냐"를 포함해 수많은 논란을 불렀다. 그는 소유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는 반문명 예술가였다. 그 어떤 비판에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백남준이 논란 속 폐모니터로 '비디오아트'를 개척했듯이 말이다.
작가는 어쩌다 이 생소한 예술에 빠져들었을까. 그는 원래 서양화가였다. 동양미술학과에 다니다 중퇴한 그는 서양화로 동아미술제, 중앙미술제, 대한민국미술대전 등에 수차례 입상했다. 생계 때문에 건축토목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고교 때 건축 공부)했지만 IMF 등으로 2000년 폐업했다. 이어 자동차 튜닝업을 시작했는데, 그게 정크아트 길로 들어선 계기다.
"자동차튜닝 기본은 용접이에요. 카센터에서 버리는 고철이 많아 가져다 몇 개의 작품을 만들어봤죠. 고철 수거자들이 놀라며 계속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빠져든 거죠. 고철은 널렸으니 물감을 사야하는 그림보다 돈도 덜 들 거라 생각했죠. 1년 6개월만에 튜닝업도 접었죠."
'환경예술 인식' 앞다퉈 돈벌이 수단화
돈이 없어 양평의 폐 우사(소 축사)를 구했다. 작품활동에 열중했고, 블로그에 작품을 소개했다. 정크아트 1세대 작가가 탄생한 것이다. 그와 같은 작가들의 활동이 알려지며 돈벌이를 노린 사업자들이 정크아트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정크아트는 폐기물(고철)로 작품을 만드는 거죠. 환경을 파괴하며 편의를 좇는 현대 인류의 맹목을 꾸짖으면서요. 이를 도용해 돈벌이하며 환경파괴를 부추기는 건 어불성설이죠. 태국에서 수입한 고철조형물(제품)을 제 작품이라고 자랑하는 이들까지 있어요. 정크아트 이름으로."
그런 그에게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생계 어려움으로 용접 부업을 했다. 아내가 작업실 운영비로 월 30만 원씩 보내는 이른바 '마누라연금'도 도움이 됐다. 아내는 생계를 위해 병원에 취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