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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혼 관계 배우자는 장례를 치를 수 없나요?

장사업무안내 지침 개정으로 '가족 대신 장례' 위한 '내부 심의' 사라져... 그 의미와 한계는

등록 2022.06.02 09:46수정 2022.06.0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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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한 여성이 병원에서 사망했다. 곁에서 임종을 지킨 남성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신을 안치하고 가입했던 상조회사에 연락했다. 상조회사 장례지도사는 연락받자마자 장례식장으로 출동해 상담을 진행했다. 우선 남성에게 사망자와의 관계를 물었다. 그 남성은 "남편"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잠시 후 장례지도사는 장례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라고 말했던 남성은 '법률혼' 관계가 아닌 '사실혼'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 장례지도사는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센터에 문의했다. "사실혼 관계 배우자는 장례를 치를 수 없지 않나요?"라며 "혹시 장례를 치를 방법이 있나요?"라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장례지도사는 고인의 부모는 모두 돌아가셨고, 혼인 이력이 없어 배우자와 자녀가 없지만, 형제는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형제들과는 30년 정도 소식이 끊어진 상태라고 설명하며 답답해했다. "남편"이라는 말만 믿고 장례 준비를 마쳤는데, 장례를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도 장례를 치를 수 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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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장사업무안내 해마다 보건복지부는 장사업무안내 자료를 제작 배포한다. ⓒ 박진옥


 2020년 보건복지부는 '장사업무안내' 지침을 개정하면서 사망자의 인척이 아닌 제삼자라고 하더라도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고 있다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사법')'에서 정한 연고자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연고자 지정' 신청서를 제출해서 지방자치단체의 내부심의를 거쳐야 했다.

그동안 법률혼과 부모·자녀 또는 형제·자매 등과 같이 혈연관계가 아니면 장례를 치를 수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혈연의 종언(終焉)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족 대신 장례'를 할 수 있는 정부의 첫 번째 지침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지난달 4일 보건복지부는 2022년 '장사업무안내' 지침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지침은 링크 클릭 https://bit.ly/2022funeral). 주요 개정사항 중 하나는 사실혼 관계 등 연고자가 아닌 제삼자가 '가족 대신 장례'를 위해 거쳤던 '내부심의'의 삭제였다.

하지만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가 장례를 치르기 위해선 여전히 '장사법' 제2조제16호에서 정한 선순위 '연고자'의 시신인수 여부를 확인해야만 한다. 즉 법률상의 배우자, 부모·자녀 또는 형제·자매 등과 같은 혈연관계인 사람들에게 시신인수 여부를 확인한 후에야 '가족 대신 장례'가 가능하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사망자가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되기까지는 서울의 경우 평균 30일 정도가 소요된다. 결국 법률혼과 혈연관계가 아니라면 '가족 대신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평균 30일을 기다려야 한다.


다행히 이번 경우는 구청의 신속한 업무 진행으로 원활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지난달 22일 사망한 여성의 형제와는 24일 연락되었고, 해당 구청에서도 바로 다음 날인 25일 사실혼 관계 배우자를 연고자로 인정하면서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장례를 잘 마칠 수 있었다.

'가족 대신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사람은 누구?

보건복지부는 '장사법'에서 정한 연고자가 아닌 제삼자 중에서 '가족 대신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의 구체적인 예시를 다음 네 가지 경우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사실혼 관계 배우자가 장례를 치를 수 있다. 그동안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부부관계로 인정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장례도 치를 수 없었다. 이제는 사실상 혼인 의사가 있고 사회적·실질적으로 부부가 되겠다는 합의로 혼인 생활을 했던 사람이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이 경우 실제 같은 주소에 동거하는 것으로 사실혼 관계를 증명할 수 있지만, 주민등록상 세대가 분리되어 있어도 무관하다. 또한 친척이나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경제적 공동체를 증명할 수 있는 공동지출 서류가 있어도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사실혼 관계 확인서'와 '사실관계 소명자료'를 함께 제출하면 된다.

둘째, 사실상 가족관계인 사람이 장례를 치를 수 있다. 가족관계등록부 등의 공부상으로 법률적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친부모와 자식의 관계, 형제 관계에 있는 사람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친자관계이지만, 법률적 가족관계는 아닌 아들이 생모를 돌봤을 경우, 그리고 실제로 혈연의 형제 관계이지만, 각기 다른 집에 입양되어 법률상으로 형제 관계가 아니어도 장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례를 치르고 싶은 사람은 '사실관계 소명자료'를 통해 연고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셋째, 조카와 며느리 같은 친족 관계도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일반상식과는 다르게 '장사법'에서는 조카와 며느리는 연고자가 아니다. 그래서 이 지침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조카와 며느리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는데도 법으로는 장례를 치르고 싶어도 치를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친족 관계 증빙서류를 준비하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넷째, 장기적·지속적 동거·부양·돌봄 관계도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장기간 지속해서 동거하며 생계나 주거를 같이한 경우, 실질적 부양이나 경제적 지원 및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 지속적 간병이나 돌봄을 제공한 사람도 장례를 할 수 있다. 즉 누가 봐도 가족처럼 생활했다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한 혈연과 법률혼 중심의 사회

올해 보건복지부가 '장사업무안내' 지침에서 내부심의를 통해 연고자를 지정하던 절차를 생략했다. 이를 통해 생전의 자기결정에 따라 사후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장례를 할 수 있는 '사후자기결정권'에 대한 보장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실관계 소명자료와 확인서 등으로 사실상 시신을 관리하는 자로 인정되면 연고자로 인정되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법과 제도의 여러 곳에서는 혈연 중심의 가족주의가 남아 있다. 문제는 관련 법이 명확하게 개정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보건복지부가 '장사업무안내' 지침을 통해 '장사법'에서 정한 '사실상 시신이나 유골을 관리하는 자'의 구체적인 예시를 제시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장례현장 전문가인 장례지도사도 이런 사실을 명확하게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제는 이러한 지침을 통한 해석이 아닌 '가족 대신 장례'를 법률로 보장하는 방안을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1코노미뉴스 http://www.1conomynews.co.kr' 오피니언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가족 대신 장례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연고자 #사실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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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영장례지원상담을 하고 있으면, 저소득시민 및 무연고자 장례지원하고 있는 "나눔과나눔"에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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