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영 시민기자
송성영 시민기자 페이스북
농부이자 작가로 자유로운 삶을 일궈온 송성영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더 자유로운 세상으로 떠났다.
암 수술을 거부하고 자연 치유법으로 암과 함께 살아오던 송성영 시민기자가 2일 밤 10시께 별세했다. 향년 62세.
고인은 글을 쓰는 농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를 다니던 그는 어느 날 회사를 나와 전국을 떠돌았다. '삶'이라는 화두를 들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지만, 몸도 마음도 자유롭지 않았다. 다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충남 공주 빈 농가에서 텃밭을 일구며 '촌놈'으로 살면서 '소작농 글쟁이'를 시작했다. 100평 남짓한 텃밭 농사를 지으며 생활 글을 쓰는 것이 수입의 전부였지만 그는 생전 "공주 촌놈 시절이 제일 평온하고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고인은 철학자였다. '적게 벌어 적게 먹고 사는 길'을 삶을 통해 찾아내려 꾀했다. 생활 속에서 '생태적 삶'을 실천했다. 공주 집 뒤쪽으로 호남고속철도가 지나면서 행복의 터를 할 수 없이 옮기면서도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화선조차 들어오지 않은 전남 고흥의 산간 바닷가 오지마을로 향했다.
고인은 자유인이었다. 일탈을 꿈꾸지 않고 일반적인 삶으로부터 일탈했다. '버릴수록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한 그는 채우는 일보다 버리는 일에 익숙했다.
두 아이에게도 자유인의 삶을 이식했다. '학교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했고, '돈을 줄 테니 가출 한 번 해보라'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강요가 아닌 가르침이었다. 그렇게 삶의 방식을 터득한 아들은 기타를 치고 작곡하고 노래를 부르는 또 다른 자유인으로 성장했다.
고인은 여행자였다. 타고난 방랑기는 고흥 시골 생활마저 툭툭 털고 일어나게 했다. 땡전 한 푼 없는데도 배낭 하나 짊어지고 곳곳을 누볐다. 수행자처럼 전국 산천과 섬, 바다 건너 인도를 '끈 풀린 개처럼 떠돌아다녔다. 스스로 고통을 들여다보고 내면을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고인은 생태적 삶의 실천자였다. 그는 먹고 입고 자는 생활 전체를 생태적 삶으로 바꾸려 시도했다. 지난 2018년 암 판정받았지만, 수술을 거부하고 운동, 식이, 마음을 다스리며 암과의 동행을 선택했다. 암세포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믿음 때문이었다.
고인이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은 '글쓰기'였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통증으로 배를 움켜쥐며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암과 함께 살아가기'는 그의 유작이 됐다.
고인의 빈소는 남대전장례식장 특 2호실이다. 발인은 5일이다.
고인은 2002년부터 최근까지 <오마이뉴스>에 글을 썼다. 연재한 글을 묶어 <거봐. 비우니까 채워지잖아>(2011), <모두가 기적 같은 일>(2012), <촌놈, 쉼표를 찍다>(2013),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인도>(2016) 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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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영의 암과 함께 살아가기' 연재기사 읽기(http://omn.kr/1pu5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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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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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함께 살아가기' 송성영 시민기자 별세... 향년 6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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