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블릿 PC를 손에 넣기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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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없는 아들을 우리 부부는 늘 흐뭇하게 생각해왔다. 반대로 딸아이는 욕망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우리의 걱정 대상이었다. 딸은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사야 하고, 그걸 갖지 못하면 가질 때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일례로 태블릿 PC를 갖고 싶다고 했을 때 남편과 나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초등학생이 가지기엔 너무 과하다', '좀 더 크면 사주겠다' 급기야 나중엔 "갖고 싶다는 걸 어떻게 다 가지며 사니?"라고 윽박을 지르는 지경까지 갔다. 하지만 딸아이는 굴하지 않았다.
조르다가, 우리를 설득시키다가, 드러눕다가, 결국은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 등 모든 기념일 선물을 하나로 농축시키는 조건으로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나는 이런 딸이 늘 못마땅해서 "욕심쟁이!", "너무 욕심부리면 탈 나" 같은 말을 하며 아이를 다그쳐왔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나에게 욕심을 드러내지 못하게 했다. 뭔가를 갖고 싶은 마음, 하고 싶다는 생각들을 떠벌리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과거를 돌이켜보면 결핍이 늘 생활화 돼 있었다. 갖고 싶은 것을 가졌던 기억보다 '나에게 과분해' '굳이 필요할까?'라는 자기 합리로 으레 포기해버리거나 내 안의 욕망을 잠재워 왔다.
그런데 과연 욕망하는 것은 나쁜 것일까? 드러내면 안 되는 것일까? 욕망하지 않는 공수래공수거의 삶이 더 선하고 아름다운 것일까?
딸아이는 늘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을 욕망한다. 욕망을 했기 때문에 갖고 싶은 것을 가지고, 원하는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 더군다나 욕망을 이뤄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괜히 짠해지기도 한다. 쉽게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숱한 수모를 겪고, 잔소리를 참아내며 인내했다. 가끔은 등짝 스매싱과 굴욕도 이겨내고, 해결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등. 나름의 노력으로 원하는 것을 결국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그것이 비난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외려 순응하지 않고 저항함으로써 쟁취해 낸 딸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왜 그동안 딸 아이의 욕망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던 걸까.
속담에서도 욕심, 욕망은 좋지 않게 표현된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못 채운다', '아홉 가진 놈이 하나 가진 놈 부러워 한다', '욕심이 사람 죽인다' 하나같이 부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불교에서는 욕망이 집착을 부르고 그 집착이 괴로움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를 없애는 수행의 길을 늘 제시해왔다. 유명 스님들이 내놓는 인생 해법 역시 무소유, 비워라, 욕심을 버려라 같은 말들로 일관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욕망했기에 성장했던 순간들
그런데 요즘 나는 과거에 더 욕망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애당초 내 것이 아닐 거라는 내려놓음의 자세, '나는 욕심이 없다'며 무소유적인 인간으로 비치길 바랐던 마음, '더 바라는 것은 욕심일 것 같아'라며 시도하지 않았던 순간들, 그런 것들은 나를 전혀 성장시키지 못했다.
외려, 비웃음을 당하고서라도 쟁취하려 했던 그 욕망의 덩어리들이 나를 좀 더 괜찮은 인간으로 빚어냈다. 우리가 진짜 조심해야 할 것은 허위 욕망, 남에게 견준 욕망이지, 욕망 그 자체는 죄가 없다.
욕망을 이미지로 그리라고 한다면 나는 한 마리의 날뛰는 야생마를 그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야생마의 갈퀴를 다정하게 쓰다듬고, 좋은 먹이를 먹여서, 잘 길들인 후 나를 더 멋진 세상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하고 싶다.
딸 아이의 욕망도, 일일이 지적하고 질책하기 보다 좋은 방향으로 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나은 가르침일지도 모르겠다. 단 날뛰는 야생마는 잘못하면 괴로움과 번뇌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그 점도 꼭 일러줘야 하겠지만 말이다.
나 역시 내가 갈구하는 욕망을 잘 발산시키고 싶다. 내면의 욕망들을 건강하게 성장하는 쪽으로 이끌어 가고 싶다. 욕망이라는 야생마에 올라타 '이랴, 이랴' 부지런히 달려서 내가 원하는 곳에 당도하고 싶다.
그렇다. 다들 가진 것도 비워낸다는 중년의 시절에 나는 욕망 덩어리로 살겠다고 이를 꽉 깨물었다. 바야흐로 욕망 중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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