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묻는다, 우리를 좀 닮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권정민 그림책, 문학동네

등록 2022.06.08 09:16수정 2022.06.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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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권정민 그림책, 문학동네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권정민 그림책, 문학동네 ⓒ 화성시민신문



나는 식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관심이 없다 보니 '목이 마르다', '빛과 온도가 안 맞는다', '화분 좀 갈아달라'는 식물의 호소가 도통 들리질 않는다. 그렇게 해서 화분식물 여러 개를 죽였다. 우리집에 유일하게 남은 스킨답서스마저 결국 말라비틀어지고 말았다. 


권정민의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는 나 같은 사람 보여주려는 그림책 같다. 그렇다고 식물 가꾸는 법이나 그린테라피에 관한 책은 전혀 아니다. 전도된 시선으로 지금껏 익숙했던 세계의 이면을 꾸준히 탐구해온 작가가 이 책에서는 식물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화분식물은 사람에 의해 까다롭게 선택된 존재지만, 이후 대부분은 사람들의 공간에서 그저 배경이 될 뿐이다. 더러는 잊히고 방치되다가 버려지기도 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식물은 그들의 기쁨과 즐거움, 애씀과 버거움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식물 자신의 이야기인 듯 덤덤하게 말하지만, 작가는 식물과 인간을 묘하게 섞어 실은 인간의 삶과 감정을 에둘러 표현한다. 그 방식이 어딘가 유쾌하면서도 어딘가 서글프다. 그리고 분명 어딘가는 따뜻하다. 힘겨운 마지막 숨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어 그렇고, 앞뒤 표지의 안쪽 면에도 틀린 그림 찾기 같은 힌트가 있다.

이 책은 현재 소다미술관 '질문하는 그림들' 전시에 오이책방 추천도서로 전시 중이다. 식물은 자기네를 우리라고, 우리 인간을 당신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그들을 돌보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들이 우리를 돌보는 거였다. 있는 듯 없는 듯 곁에서 가만히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 

식물이 묻는다. 공동체의 건강한 공존을 위해서는 당신도 우리를 좀 닮아야 하지 않겠냐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때로는 끝도 없는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누군가를 다 안다고 자신하는 대신 그저 조금은 알고 있다는 겸손함과 세심함으로.

물을 줘보면서도 괜한 짓이다 싶었던 스킨답서스가 다음날 멀쩡하게 쌩쌩해졌다. 살아줘서 고맙다. 식물의 생명력은 다시금 놀랍다고, 너무 늦는 때라는 건 없다고, 나도 그들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글/ 동탄그물코 오이책방지기 한수연

화성시 동탄중심상가2길 8 로하스애비뉴 205호


031-8015-2205

월-금 오전11시-오후6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권정민 (지은이),
문학동네, 2019


#식물 #오이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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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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