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공설시장 앞에 위치한 '청년공유작업실 놀자랩' 앞에서 만난 도공디공회의 윤경(좌), 랄라(우)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도공디공회의 활동과 공부는 남원 구도심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동시에 이 모임은 남원이라는 도시에 갖는 관심과 남원에 만들어가는 변화는 어떤 공간, 어떤 도시에도 국한되지 않는 중요한 메시지를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랄라가 도공디공회의 목표를 설명했다.
"예를 들면 요즘 생겨나는 혁신도시 같은 곳은 걸어 다니기 힘들어요. 그건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의 속도에 맞춰서 만들어 놓은 도시이기 때문에 그래요. 근데 거기에 사는 분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를 꿈꿀 수는 없잖아요. 남원에서도 면 단위의 산내면 같은 곳은 걸어서 모든 걸 해결하게 하기 위해서 병원도 터미널도 백화점도 다 갖다 놓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뭐든지 자기가 사는 지역에 맞춰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저는 남원에 살고 있으니까 남원에 관심을 갖는 것일 테고, 누구든 '내가 사는 지역'을 생각할 때 필요한 도시의 모습은 다 다를 거예요. 중요한 건 '어떤 도시가 이상적이거나 좋은 도시다'라고 규정하려는 건 아니라는 거에요. 나에게 필요한 도시는 어떤 모습인지를 모든 시민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인식이 중요한 것 같아요.
도시가 누군가에 의해서, 무언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 우리는 계속 살잖아요. 근데 시민이 도시의 주인이 되게 하려면, 일반 시민들도 자신이 사는 장소와 도시에 관심을 두고, '내가 사는 곳이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야 해요. 그게 도공디공회의 제일 큰 목표예요."
이런 시민들이 이미 존재하는 것, 그리고 계속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목표의 반쯤은 달성한 것 아닐까. 차곡차곡 쌓아온 공부의 시간은 윤경과 랄라의 일상과 주변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윤경이 경기 수원을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말했다.
"작년에 수원 행궁동에 답사갔을 때, 그 도시의 매력이 느껴지더라고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정말 공부가 헛되지 않았어요. 아이들한테도 이야기해줬죠. '엄마가 오늘 행궁동이라는 곳에 갔는데 수원시에서 이런 것들도 해주더라. 너무 부러웠어.' 하고요. 그럼 아이들이 '나도 가보고 싶어' 하기도 하고요. 그럴 때 공부가 더 재밌게 느껴져요."
윤경은 도공디공회 활동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어떤 '주변'을 만들어 줄 것인지 고민하고 상상하는 기쁨을 얻었다. 생각의 울타리도 자연스레 넓어졌다. 지역의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되고, 주변 사람들과 앞으로는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윤경이 사는 지역에서 필요한 변화에 관해 주장할 때, 도공디공에서 쌓은 지식이 발휘되기도 한다.
모두의 공부
랄라는 이 모임 덕분에 공부를 지속해나갈 힘을 얻는다고 했다. 전공자들하고만 만나고 이야기 나누어오던 랄라가 낯설고 어려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민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을지는 계속 고민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공부의 깊이는 한층 더 깊어져 간다.
"건축 설계 일을 하고 있지만, 일하는 것과 공부하는 건 좀 다르잖아요. 시간을 내서 공부를 계속해야 발전이 있잖아요. 혼자서라면 아마 힘들었겠죠. 일과 관련된 것 아닌 이상은 공부하느라 시간을 쏟지 못했을 것 같아요. 비전공자들과 이야기하면서 제가 더 잘 아는 부분들을 풀어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되니까 거기서 더 공부가 되기도 하고요. 쉽게 표현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해야 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지도 배워가는 것 같아요.
공공도서관 관련 기사에 이런 표현이 있었어요. '공공이란 어쩌면 다 함께 자연광을 쐬는 일일지도 모른다'고요. 누구에게나 다 밝게 비추는 햇빛 같은 그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 있으면 안 되는 그게 바로 공공이라는 거죠. 우리 사회와 우리 지역이 그렇게 공공 디자인하고 공공 인프라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됐어요.
사실 도시는 누구의 것도 아니라 공공 이용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져야 하거든요. 그런데 주로 돈 있는 누군가에 의해서만 만들어지고 돈 있는 사람들이 타는 자동차에 의해서만 구성되는 거예요. 누구나 쉽게 이동하거나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침해당하는 거죠. 그런 것들을 많이 살펴보고 이야기 나누고 있어요."
랄라와 윤경을 만나고 온 것만으로 이미 세상을 보는 눈이 한층 트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것', '변할 수 없이 고정된 것'으로 보였던 우리 동네의 조각조각 풍경들이 이런저런 상상으로 일렁거렸다. 어쩌면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이 풍경들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이 동네에 산다는 것만으로 나에게도 지분이 있다, 변화를 꿈꿀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도공디공회의 첫 멤버이기도 했던 아라는 언젠가부터 서울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어 서울에서 합류하고, 윤경은 전주에서 함께하고 있으며, 구례와 곡성에서도 모임을 찾아오는 이들이 생겼다. 어쩌다 전국모임이 된 셈이다. 이렇게 된 이상, 도공디공회의 영향이 전국 곳곳에 솔솔 퍼져나가 내가 사는 동네가 어떻게 생기면 좋을지 '한 목소리씩' 내는 시민들이 그렇지 않은 시민들보다 더 많아지기를 꿈꿔본다. 도공디공회의 공부 흔적은 웹사이트에 보기 쉽게 잘 기록되어 있으니 그 자취를 따라가며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이 재미난 공부를 시작해보는 건 또 어떨까.
* 도공디공회의 자세한 활동 기록은 도공디공회 홈페이지(https://sites.google.com/view/dogongdegong)를 참고하면 된다.
글 | 푸른
사진 | 임현택
기획/진행 | 누리
Author 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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