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큰들의 진은주 기획실장(좌), 전민규 예술감독(우)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국도에서 벗어나 고불고불한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갈아 놓은 밭에서 올라오는 흙내음이 향기롭다.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앉은 마을을 지나 계속 올라가니, 어느 순간 주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널따란 터가 나온다.
저 멀리 푸르게 이어진 능선들 사이로 웅석봉과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고, 바로 옆 솔숲에서는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하다. 비탈진 길 곳곳에 다랑이처럼 자리한 지붕들 뒤로는 심은 지 얼마 안 된 어린 나무들이 자라나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다.
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수리에 들어선 '산청 마당극마을'에는 극단 큰들(큰들문화예술센터/예술공동체큰들) '식구들'이 모여 산다. 1984년에 창단한 큰들은 '효자전', '오작교아리랑', '최참판댁 경사났네' 등 지역색이 두드러진 다수 창작극을 선보이며 마당극의 역사를 이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2019년 이 마을을 조성한 이후 예술가들의 공동체로도 입소문이 났다. 뜰 한가운데서 꽹과리와 북을 치며 공연 연습에 한창인 걸 보니 이곳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극단'과 '공동체' 사이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개성 강한 예술인들이 굳이 공동체 생활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또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이런 우문(愚問)을 해소하고자, 큰들의 전민규 예술감독과 진은주 기획실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졸업하면 같이 살자, 이 말이 시작이었죠"
"대학 때 동아리 활동하면서 그런 말들을 많이 했어요. 졸업하면 같이 모여 살자고. 아, 저희 세대만 그런 건가요?(웃음) 동아리 중에서도 풍물패나 탈반 사람들이 유독 그런 성향이 강했죠. 저 역시 마찬가지고. 큰들에 몸담은 지 32년 됐는데, 이렇게까지 큰 규모는 아니어도 천 평 정도 되는 땅 구해서 같이 사는 걸 늘 꿈꿔왔어요."
극단 큰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경상대에서 풍물치고 공연하던 '탈반'이 있다. 이곳 출신들이 사회에 나와 극단을 결성하자 서울 경희대에서 역시 탈반 동아리를 하던 전민규 감독이 졸업 후 내려와 합류했다. 학생 때부터 특유의 끈끈함을 자랑하던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같이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전 감독은 그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그는 단원들이 함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부담을 나누어 짊어짐으로써 좀 더 안정적으로, 그리고 즐겁게 극단 활동과 일상생활을 지속해나갈 수 있기를 바랐다.
20년 전쯤, 산청 금서에 땅을 구해 중도금까지 치르면서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지는가 싶었는데, 땅 주인이 돈만 챙겨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만다. 호되게 아픈 경험을 치른 전 감독은 그 후 지인의 도움으로 경매에 나온 땅 2백 평을 얻었다.
집 짓고 한 1년 사람들과 살아보니 터가 너무 좁게 느껴졌다. 사정이 이쯤 되면 공동체를 포기한들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을 테지만, 오랜 꿈을 접기보다 다시 판을 벌이기로 마음먹은 그는 2010년에 현재 마당극마을이 들어선 2만여 평 부지를 구입하는 데 성공한다.
"산청군에서 땅을 사준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에요. 그 당시에 도시인 30가구 이상이 땅을 사서 시골에 오면 지자체와의 협약을 전제로 정부가 토목공사를 해주는 지원사업이 있었어요. 거기에 응모하려면 우선 땅부터 사야 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이 터를 발견한 겁니다. 천왕봉이 보이길래 바로 여기다 싶었죠."
가진 건 없어도 의기만은 충천했던 극단 단원들은 어떻게든 재원을 마련하기로 결정하고 적게는 백만 원부터 많게는 5천만 원까지 빌려왔다. 오래 인연을 맺어온 후원회원들도 저마다 나서서 돈을 빌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일주일 만에 모은 3억 원에 은행빚을 더해 땅을 샀고, 2015년에는 정부가 심사해서 딱 한 곳에만 토목공사를 지원해주는 공모사업에도 선정됐다. 공사가 시작되고 '마을'의 모양새를 갖추기까지는 4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했다.
"2019년 10월에 준공식 치를 때 제가 그랬어요. 같은 노래를 매일 부르고 같은 시를 매일 읊으면 어느새 삶이 그 노래 가사처럼, 시 구절처럼 되는 것 같다고요. 이 마을이 그 증거 아니겠어요? 우리는 공동체 만들자는 노래를 허구한 날 징글징글하게 불렀으니까(웃음)."
함께하는 삶을 위해 부르는 '좋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