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의 첫 심부름>은 아이가 어렸을 때 즐겨 읽었던 그림책입니다. 책에는 그때 남긴 엄마의 책편지가 붙어있습니다.
진혜련
아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그림책 중에도 <이슬이의 첫 심부름>이 있었다. 책 속에 이슬이는 엄마 심부름으로 우유를 사러 갔는데 크게 나오지 않는 목소리, 자동차 소음, 다른 손님들 때문에 계속 주문을 하지 못해 애가 탄다.
내 아이가 겪은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 책에서는 가게 아주머니가 마침내 이슬이를 알아봐 주시고, 지나친 것에 대해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신다. 이슬이는 그제야 마음이 놓여 눈물 한 방울을 똑 흘리고 만다.
현실은 책과 좀 다르다. 바쁘고 급한 어른들 틈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 한 발짝 떨어져 기다리는 아이가 있을 뿐이다. 만약 아이가 <나의 첫 심부름>에 나오는 아이처럼 좀 더 어리고 작은 아이였다면 심부름하는 게 귀엽고 기특하다며 도와주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열 살도 많은 나이는 아닌데… 주위 어른들이 알아봐 주시고 조금만 배려해주셨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아주머니를 부르는 것은 내가 하고(내가 하는 말도 처음엔 묻혔다) 메뉴를 주문하고 계산하는 것은 아이가 했다. 만 원짜리 두 장을 손에 쥐고 자신 있게 집을 나섰던 아이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어깨가 조금 처졌다. 나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게 원래 쉽지 않은 일이야. 잘했어."
나도 심부름을 시키기 전에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겪어보니 심부름은 아이에게 크나큰 도전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아이에게 되도록 심부름의 기회를 많이 주려고 노력한다.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심부름을 통해 아이가 배우는 게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순탄치 않은 일을 자꾸 부딪치고 경험해 봐야 더 성장하고 단단해질 수 있다.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아무리 좋은 학습활동을 제시해도 아이의 자신감, 용기, 책임감, 문제해결력, 집중력, 기억력, 자기주도성, 사회성을 길러주기는 힘들다. 그런데 심부름은 가능하다.
더 넓은 세상으로 가게 만드는 길
나는 카페나 음식점에 가서 음료나 음식을 주문하는 것, 냅킨이나 물을 더 달라고 직원에게 말하는 것, 남은 음식을 포장해달라고 부탁하는 것 등을 아이에게 시킨다. 분리수거 날에는 아이가 학원 가러 나갈 때 양손에 재활용품을 들려 보내고, 수시로 동네 마트나 문구점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 오게 한다. 내가 하는 게 더 빠르고 효율적일지라도 아이가 해보게 한다.
열 살 아이의 심부름은 서툴다. 시킨 것과 다른 물건을 사 오거나, 빼놓고 안 사 오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조금씩 나아진다. 며칠 전에는 무인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는 심부름을 시켰는데 가족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알차게 사 오고 영수증까지 꼼꼼히 챙겨왔다. 조만간 매일 아침 등굣길에 교통정리를 해주시는 경비 아저씨께 비타민 음료를 전하는 심부름도 시킬 생각이다.
아이는 심부름이 긴장되고 떨리는 일이지만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심부름을 하고 나면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나는 아이에게 "넌 그냥 책 봐. 엄마가 할게"라는 말보다 "심부름 다녀올래?"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것이 아이를 더 넓은 세상으로 가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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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아이의 첫 심부름, 이럴 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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