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장이
북뱅크
'애, 거기서 뭐해?'
큰 맘 먹고 그 애에게 말을 건넨 날, 그 애는 '톡톡톡톡', 걸어내려오더니, '탁탁탁', 앞서 걸었어
'깜장이'라는 제목에 딱 어울리게 생긴 까만 애. 귀신? 도깨비? 유령?, 일본식 표현으로 오바케(お化け)라고 한단다. 익숙한 문화 콘텐츠 속 오바케로는 <이웃집 토토로>에 등장하는 숲의 정령 토토로가 있다. 아이는 그 '오바케', 깜장이를 따라 낯선 집으로 들어선다.
정중하게 차를 대접하는 깜장이와 함께 차도 한 잔 마시고, 깜장이가 열어주는 벽장 안으로 들어서는 아이. 문을 닫자 깜깜해진 벽장 속 공간, 그런데 벽장 위 또 다른 공간이 열리고, 벽장 속으로 들어간 나니아처럼 오래된 집 속에 숨겨진 판타지의 공간 속에서 깜장이와 아이는 한껏 뛰어논다. 그리고 산처럼 커다란 털뭉치에 푹신 안겨 잠이 든 아이.
'나, 엄마 꿈을 꿨어.'
그림책을 함께 읽고 저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말했다. '나, 엄마 꿈을 꿨어' 하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이 깊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담벼락 위에서 등지고 앉은 검은 '애', 이웃집 토토로처럼 딱 보기에도 '귀엽다' 하는 느낌이 분명하지 않은 깜장이와 아이가 동행하는 장면은 긴장감을 주었다.
아이가 깜장이를 따라가는 장면 때문에 이 그림책에 대해 엇갈린 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한단다. 오래된 집, 깜깜한 벽장 안이라니. 그런 팽팽한 긴장감은 그래서 외려, 털뭉치 속에서 깨어난 아이가 '엄마 꿈'을 꾸었다고 했을 때, 더 뭉클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늘 홀로 '난 괜찮아' 하던 아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깊이 깊이 감추어 두었던 아이가 깜장이와 함께 한껏 뛰어놀고 한숨을 잔 이후에야 풀어놓는 그리움이 더욱 애잔했다.
<토마토야 왜 그래> 이후 16년,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밑그림에만 2년 8개월이 걸렸다는 다나카 기요 작가의 <깜장이>는 그림책 초반의 흥미진진한 깜장이와의 동행과 놀이의 여정 끝에 비로소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풀어놓는다.
그래서 아이의 깊숙한 마음 속에 자리잡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더욱 절절하게 느끼도록 한다.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더욱 애틋해졌다는 작가의 생각은 '절제의 미적장치'이기도 한 모노크롬(단색) 동판화 기법으로 진솔함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