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4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수백억대 상속세 탈루 의혹 등을 수사 중이었던 검찰이 한진빌딩을 비롯해 10여 곳에 대한 압수 수색을 실시했다. 당시 압수수색이 실시된 서울 중구 한진빌딩 모습.
연합뉴스
이른바 한진 사건은 법 개정 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처음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시도한 사례이다. 조현아, 조원태, 조 에밀리 리(조현민)가 33.3%씩 소유하고 있던 '싸이버스카이'는 대한항공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통신판매 사업, 대한항공에 게재되는 광고의 판매 업무 대행 사업을 영위했다. '유니컨버스'도 故조양호와 세 자녀가 100% 소유하던 회사로, 대한항공 콜센터를 비롯해 한진그룹의 여객·여행 관련 회사의 콜센터를 운영했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와의 각종 거래를 통해 터널링을 시도했다고 보고, 시정조치 및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행위는 구체적으로 ① 대한항공이 광고수입 중 일부를 포기하고 싸이버스카이에 귀속시킨 행위 ② 싸이버스카이의 통신판매 수수료 일부를 면제해준 행위 ③ 싸이버스카이의 판촉물 가격을 지나치게 크게 인상해 준 행위, ④ 유니컨버스에게 불필요한 콜센터 사용료 및 유지보수료를 지급한 행위였다.
첫 사건이었던 만큼 사실관계 판단 못지않게 법리적 해석도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일감몰아주기에서도 부당성이 별도의 요건으로 입증돼야 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문제의 발단은 법조문이 "부당한 이익"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법 조문에 '부당한' 이 명시돼 있으므로, 부당성이 공정위가 입증해야 할 별도의 요건이라는 주장이었다. 대법원도 이 같은 주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다만, 일감몰아주기의 부당성은 불공정거래와 달리, "변칙적인 부의 이전 등을 통하여 대기업집단의 특수관계인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이 유지·심화될 우려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설시했다.(대법원 2017두63993 과징금부과처분 등 취소 청구의 소)
이번 판결이 타당하다고 보는 입장은 한진 사건은 일감몰아주기 규모가 작은 편이어서 총수 일가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런 경우까지 공정거래법이 규제하기엔 과도하므로, 부당성 요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은 "정상적인 거래에서 적용되거나 적용될 것으로 판단되는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하여 수행할 경우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제공", "특수관계인과 현금, 그 밖의 금융상품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 "사업능력, 재무상태, 신용도, 기술력, 품질, 가격 또는 거래조건 등에 대한 합리적인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하는 행위를 일감몰아주기, 터널링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행위는 규모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총수 일가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유지·심화시킬 우려가 존재하는 부당한 행위이다. 따라서 일감몰아주기 규정에서 '부당한 이익'이라는 표현은 동어반복이나 강조의 의미일 뿐, 별도의 요건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대법원은 최근 하이트진로 사건에서 공정위 손을 들어주긴 했으나, 역시 부당성을 별도 요건으로 보았다. 다만, 거래방식(인건비 지원)이나 규모 측면에서, 부당성이 입증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판결 자체가 적은 만큼, 어느 정도의 일감몰아주기가 부당성이 있는 것인지 예상하기는 어렵고, 앞으로 공정위가 구체적인 지침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을 상당히 떨어뜨린 법원의 판단에 큰 아쉬움이 남는다. 행정소송은 국가가 권한을 남용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견제한다. 행정소송이 활성화되고 법리가 발전할수록 삼권분립은 완성되고, 국민의 권리는 보호되며, 국가권력은 실효성 있는 법률의 통제를 받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법적 구제를 누구보다 잘 활용해 보호 받는 것은 대기업집단과 소수의 지배주주인 듯하다. 이들은 막대한 쟁송비용을 쓰면서, 공정거래법 등 규제법령의 법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행정부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행정소송이 갖는 본연의 기능인 만큼, 법리가 정교해질수록 규제영역은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적용받는 것은 대기업집단과 그 총수 일가뿐이고, 이들은 경제력 집중으로 날이 갈수록 국가권력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처럼 일반 국민의 권리와 거리가 먼 규제 법령에 대해서는 법원이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규제 실효성에 보다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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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일감몰아주기, 부당하지 않은 일감몰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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