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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포토스 설립자 브레송의 사진세계를 만나다

[리뷰] 한가람미술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

등록 2022.07.08 17:28수정 2022.07.0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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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큰 전쟁과 끊이지 않는 작은 전쟁들, 기아와 독재로 점철됐던 20세기, 진실을 알리려 고군분투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인간성이 말살되는 각지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인류와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었다. 당대 가장 효과적인 기록수단 중 하나는 사진이었으므로, 이들은 기꺼이 사진기를 들고 부조리한 현장으로 달려 나갔다.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는 20세기 포토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조직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모어, 조지 로저 등 걸출한 사진가들이 2차 대전 종전 뒤인 1947년 설립했다. 각국 매체에게 필요한 사진을 공급하는 사실상의 사진 통신사 역할을 수행하며 특정 매체에 소속되지 않은 작가들에게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했다.


당초 다섯 명의 작가가 출범시킨 매그넘은 어느덧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보도사진가 조직체 중 하나가 되었다. 세바스티안 살가도와 같이 시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사진가들을 꾸준히 배출한 건 물론, 그간 쌓아온 데이터베이스만으로 각국에서 최고수준의 전시를 열 수 있을 만큼 실력과 명성을 함께 갖춘 조직으로 각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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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결정적 순간 포스터 ⓒ 한가람미술관

 
보도사진의 거장, 브레송의 작품세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은 지난달부터 올 10월까지 매그넘포토스 창립 주역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전을 연다. 감상에 최적화된 사이즈로 인화된 브레송의 작품들을 시대적으로 나누어 두어 그의 작품세계를 순식간에 가로지를 수 있다.

브레송은 그저 한 명의 사진가를 넘어 후대 작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사진집 <달아나는 이미지들(영문판: 결정적 순간)>은 사진과 보도, 예술을 대하는 그의 관점과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작이다. 출간 이후 오랫동안 일종의 교범으로써의 역할을 해냈고 책에 실린 여러 문구들이 많은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깊은 영향을 줬다.

브레송의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피사체가 대부분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브레송은 "내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언제나 인간이었다. 인간, 그리고 짧고, 덧없고, 위협받는, 우리 인간의 삶"이라며 자신이 무엇을 찍고 전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인간과 그들이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브레송이 찍고자 한 것이었다.

브레송은 사진이 찰나를 영원히 붙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후에 불교에 귀의하는 브레송에게 있어 찰나는 그의 인생을 가로지르는 핵심적인 개념이기도 한데, 책 영문판 제목이자 이번 전시 부제이기도 한 '결정적 순간'이란 말은 실제로는 찰나의 개념에 가깝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찰나는 아주 짧은 시간이다. 불교의 수와 시간개념에서 등장하는 찰나는 탄지의 10분의 1이다. 탄지는 다시 순식의 10분의 1이며, 순식은 수유의 10분의 1, 수유는 준순의 10분의 1, 준순은 모호의 10분의 1이다. 이렇게 1보다 작고 0보다 큰 아주 많은 숫자의 개념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찰나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작은 수라고 알아두면 되겠다. 우리가 순식간이라고 하는 그 짧은 시간보다도 100분의 1만큼 짧은 것이 바로 찰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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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 사진집 표지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은 흐르는 시간 속 찰나를 붙드는 일

브레송에게 사진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의 허리춤을 베어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다. 브레송은 인위적으로 피사체를 배치하고 기관총처럼 쏘아대듯 여러 장을 연사하는 사진 찍기 방식을 혐오했으므로, 그가 찍는 찰나는 언제나 자연스런 삶의 한 순간이었다. 그는 그로부터 인간과 삶의 진면목을 담아내길 원했다.

"내가 찍고자 했던 사진은 하나의 상황으로 구체화되는 사진이다. 그 한 장면에 모든 게 담겨 있고 그 자체로서 형상과 직결된 사진인데 나에겐 그런 것이 본질적인 것이자 시각적 즐거움이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1973)

브레송의 사진집에 근거해 그의 대표작들을 쭉 늘어놓은 이번 전시는 그가 어떤 자세로 사람과 그들의 삶을 대하려 했는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책과 마찬가지로 그가 주변인들과 나눈 서간문도 함께 전시해두었으며, 책을 읽지 않은 관람객을 위해 적절한 설명도 배치해두어 이해를 돕는다.

다만 전시의 격을 떨어뜨리는 사소한 잘못들은 아쉬움을 자아낸다. 우선 전시 후반부로 갈수록 설명이 빈약해진다는 점이 그렇다. 책 한 권과 동명의 다큐멘터리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 한 해설도 브레송이라는 한 인간의 세계를 총체적으로 설명하기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전시를 기획하며 보다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고 효과적인 접근법을 고민했는지 의심스럽다.

또한 로버트 카파를 로버트 파카라 표기한다거나 난민 추방을 난민 주방으로 오기한다거나 하는 실수가 곳곳에서 보여 실망스럽다. 활자가 많지 않은 전시이기에 충분히 검수할 수 있는 부분인데도 1만 8000원짜리 가격대 있는 전시에서 골라내지 못했다는 게 안타깝기 짝이 없다. 지난 수년 간 한가람미술관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이 같은 잘못을 미술관 측이 적극적으로 보완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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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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